화개장터 모이는 호영남 이웃들
전주 닮은 진주서 비빔밥 삼매경
책향 그윽한 부산 책방골목 탐방
가을야구 꿈 부푼 대전 야구팬들
대학생들은 졸업을 앞두고 방학을 맞으면서 저마다 고민에 빠진다. 과거를 돌아볼 틈도 없이 앞만 보고 살아온 것 같은 후회감이 든다 그런 후회감속 자신을 돌아보고 내일을 계획할수 있도록 백팩과 카메라, 수첩을 들고 떠나는 여행은 언제나 설렘을 준다.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코레일의 ‘내일로’ 티켓을 끊고, 직접 여행에 나섰다.
△화개장터에서 영호남은 가까웠다.
전주에서 출발해 전라선 철길을 따라 순천까지 가면 하루에 딱 무궁화호 4대만 운행하는 경전선 철도를 탈 수 있다. 그 경전선 철도를 타고 하동역에 도착했다. 처음 가보고 싶었던 곳은 바로 그 유명한 화개장터. 관광지이자 오래된 상권인 만큼 역이나 시가지가 가까우리라 생각했지만, 화개장터는 하동 시내에서 섬진강을 따라 1시간가량 올라가야 하는 곳에 있었다. 버스를 타고 섬진강 강줄기를 거슬러 올라가는 동안 보이는 바깥 풍경. 강가에서 재첩을 잡는 사람들, 조그만 계곡에서 피서를 즐기는 아이들이 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평화로움을 보여주고 있었다.
한 시간이 지나 도착한 화개장터. 구례, 광양, 하동, 산청에서 직접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산나물과 약초 종류를 들고나와서 흥정하는 모습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이곳은 경상도와 전라도가 어우러지는 교차로 같았다. 40년째 직접 농사를 지어 화개장터에서 장사를 하는 이관엽 할머니(74)는 화개에서는 모두가 이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구례사람 하동사람 그런 거 크게 상관 안 해 그냥 강 건너에 사는 사람이지.”
화개(花開)는 말 그대로 ‘꽃이 핀다’는 의미. 꽃은 계절을 따라갈 뿐 섬진강의 동쪽과 서쪽을 가리지는 않는다. 여기는 사람들이 꽃을 닮아가는 듯했다.
△호사스러운 음식과 오랜 역사, 진주
하동에서 열차로 30분이면 도착하는 진주. 오랜 역사(歷史)와 한옥으로 지어놓은 역사(驛舍), 그리고 호사스러운 음식에 이르기까지 진주는 전주와 닮은 점이 많은 도시였다. 금강산도 식후경, 무더운 날씨에 맞춰 진주냉면으로 늦은 점심부터 해결한다.
이북에 평양냉면과 함흥냉면이 있다면 이남에는 진주냉면이 있다고 그랬던가, 독특한 육수의 향과 육전을 올려 풍부한 고명이 입맛을 돋운다. 일반적으로 냉면 한 그릇으로는 포만감을 느끼지 못하지만, 진주냉면은 아니었다. 냉면치고는 조금 비싼 가격이 흠이라면 흠이지만 한 끼 식사로는 부족함이 없다. 에어컨 바람과 시원한 육수, 두툼한 육전까지 있는 잠깐의 피서가 영원하길 바랐지만 결국 다시 땡볕으로 나왔다. 그리고 향한 곳은 진주성.
진주성 내에는 서원과 박물관 등의 볼거리가 있지만 그래도 가장 관심이 가는 곳은 논개와 관련된 곳이었다. 촉석루와 논개 사당을 둘러보고 성벽에 붙은 작은 문을 통하면 강가로 나가는 길이 있고 강가에는 넓적한 바위 하나가 떠 있다. 이 바위가 바로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남강에 몸을 던진 그 바위다. 혹여 관람객이 남강에 빠질까 싶어 지금은 바위 위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지만 그래도 바위에 새겨진 의암(義巖)이라는 글자가 뚜렷하게 보인다.
진주성을 나와서는 근처 시장에 있는 한 식당에 들렀다. 진주비빔밥으로 유명한 이 식당은 겉보기에는 허름하지만 3대를 이어가고 있는 곳으로 진주를 찾는 사람들은 빼먹지 않고 들리는 곳이다.
이윤자(66) 사장은 40년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꽤 늦은 저녁 시간이었음에도 향이 진한 선짓국과 싱싱한 육회가 올라간 비빔밥을 내어주는 이 사장의 친절에 비빔밥 한 그릇을 금세 비웠다. 육회와 참기름 향이 진하게 느껴지면서 담백한 맛과 부드러운 식감이 일품이었다. 전주비빔밥과 달리 고추장 맛은 거의 나지 않아 고추장 맛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밋밋할 수도 있는 맛이었다.
△변해가는 부산에서 변하지 않는 것들
부산에는 옛 모습이 많이 남지 않았다. 자갈치 시장은 신식 어시장으로 바뀌었고 국제시장은 리모델링이 거의 다 끝났다. 옛 모습이 그대로 남은 곳은 책방골목과 차이나타운 정도였다. 부산역에 도착해 차이나타운부터 들렸다. 차이나타운을 개척한 화교들이 한국문화에 동화되면서 예전처럼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아직 화교학교와 음식점이 그대로 남았다. 러시아인을 비롯해 다른 외국인들이 이곳에 정착하면서 언제까지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이 유지될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한쪽에 걸려있는 청천백일기가 아직은 이곳이 차이나타운임을 알리는 듯했다. 휴가 기간에 대부분이 문을 닫았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보수동 책방골목으로 향했다.
책방골목은 큰 변화가 없었다. 헌책을 취급하지 않는 곳도 늘었고 카페식으로 바뀐 서점도 생겼지만, 책 사러 온 사람들과 사진 찍으러 온 사람들로 부대끼는 거리는 예와 같았다. 부대끼는 사람이 많음에도 골목 구석까지 흘러넘치는 헌책 냄새도 여전했다. 일제강점기 때 발간된 이광수의 단편집에서부터 고작 몇 개월 전에 발간된 소설책에 이르기까지 책은 여전히 각자의 향을 뿜어내고 있었다.
역시 헌책은 언제나 매력적이다. “새 책에서는 느끼지 못하는 편안함, 그리고 다른 이의 흔적이 헌책만의 매력이라고 생각해요” 책방골목에서 20년째 서점을 운영하는 양수성 사장(46)의 말이 마음에 와닿는다. 그 편안함이 조금이라도 더 오래 남기를 바랄 뿐이다.
△가을을 기대하며 행복한 대전
대전에 거주 중인 지인의 반응은 대전여행을 만류하는 쪽에 가까웠다. 볼만한 게 없는데 왜 오냐는 반응. 그러다가 최근에 한화 이글스의 성적이 좋다는 말과 함께 이글스파크 야구장을 추천받았다.
막상 대전역에 도착하니 이글스파크는 꽤 멀었다. 다행히도 대중교통이 잘 짜인 편이어서 찾아가기 어렵지는 않았다. 그렇게 이글스파크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4시 반. 경기까지 한 시간이 넘게 남았지만, 한화 팬들은 벌써 몰려들고 있었다. 캐치볼을 하는 초등학생 아이들부터 유니폼을 구매해 한쪽에서 표시하는 대학생까지 모두 무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표정에는 생기가 있었다. 가을야구가 가시권에 다가오면서 자신감이 생긴 듯했다. 현재 한화이글스의 순위는 3위. 수년간의 암흑기를 거치면서 ‘부처’라는 별명까지 가지게 된 한화 팬들에게 올해의 가을은 조금 특별하게 다가오고 있다.
“20년 이상 한화 팬이었어요. 올해는 정규리그를 2위로 마치고 한국시리즈까지 간다고 생각합니다. 호잉 선수가 잘해줄 거라고 믿어요” 여름휴가를 이글스파크로 왔다는 한화 팬 주윤 씨(42)의 말이 대다수 한화 팬의 희망을 대변하는 듯했다. 햇살이 뜨거운 여름 한가운데에서 대전은 벌써 가을을 꿈꾸고 있다.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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