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우에 농장’ 목재건물 주저앉고 수풀 우거져
구마모토 가옥·창고, 주민참여 공간으로 변신
“그때 일본놈들 악랄했지. 때리고 빼앗고 일 시키고…”
광복절을 하루 앞둔 14일 오전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용서마을. 일본식 가옥에서 연세가 구순에 가까운 할머니는 어린 시절 기억이 또렷했다. “백 마디 말보다 툇마루에 앉아 마당을 바라보고 있으면 내 마음을 알 것”이라고 말했다.
할머니의 말대로 툇마루에 앉아 바라보니 다우에(田植) 농장 사무실이 보였다. 일제강점기 다우에는 500명의 소작인을 거느린 지주였다. 조선식산은행(朝鮮殖産銀行)에서 저리로 돈을 빌려 화호리 주민들에게 빌려주고, 갚는 날짜에 사무실을 비우는 ‘악덕 업자’로 알려져 있다. 당시 화호리 주민들은 이자가 늘어나 땅을 빼앗겼다.
기자가 찾은 다우에 농장은 붕괴 직전이었다. 담벼락은 허물어졌고, 2층짜리 목재 건축물은 오른쪽으로 주저앉았다. 수풀까지 우거져 흉가처럼 보였다. 한 주민은 “다우에 농장이 광복 후에 우체국으로 사용되다가 개인 땅으로 소유권이 넘어갔는데, 가끔 건물 주변에서 콩 밭 매는 주인을 본다”고 귀띔했다.
화호리에선 다우에보다 구마모토 리헤이(熊本利平)가 ‘최악의 수탈자’로 꼽힌다. 구마모토는 농민에게 매년 과도한 소작료를 착취했는데, 수탈한 쌀은 신태인역과 동진강에서 군산항을 거쳐 일본으로 들어갔다.
다우에 농장에 비해 보존 상태가 좋은 구마모토 가옥은 지난 2005년 11월 11일 등록문화재 215호로 지정됐다.
스물 하나에 시집와 근 30년을 살았다는 한 주민은 “우리 집은 일제강점기에 인부들 숙소로 쓰였다. 역사적 의미가 커 집을 허물지 않고 있다. 주변에 이런 건물이 많다”고 말했다.
정읍시는 일제 수탈의 아픔을 간직한 건물 중 구마모토 가옥과 창고를 주민 참여 공간으로 꾸미고 있다.
구마모토 가옥 아래에 있는 창고는 광복 후 화호중앙병원으로 쓰이다 화호여고가 설립된 뒤 학교 건물로 사용되다 70년대 중반 다시 일반창고로 방치됐다.
정읍시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공모사업에 선정돼 총 22억 원(국비 10억·시비 10억·도비 2억)을 투입, 지난해 10월부터 오는 11월까지 화호리 일대 근대역사문화관광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면서 “수탈의 역사를 전시하는 공간을 비롯해 주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시설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일제 수탈의 아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김제시 화호리를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 주변은 조선인 공립보통학교, 일본인 심상고등소학교, 화호 양조장, 소화 여관, 동양척식주식회사 화호사무실, 화호교회 등 방치되다시피 한 일제강점기의 상흔이 많다.
김재영 (사)정읍역사문화연구소 이사장은 “정읍시 신태인읍 화호리에는 과거 일제의 쌀 수탈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다”면서 “수탈과 저항의 양 측면을 볼 수 있는 현장 교육의 장소로 활용하고, 나아가 세계문화유산 등재도 검토해 볼 만한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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