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북서쪽에 있는 뮌스터는 인구 26만 명 정도의 크지 않은 도시다. 중세의 사원과 교회, 시청사 등 사적이 많이 남아 있어 구 시가지가 특히 아름다운 이 도시에서는 10년마다 한번 대규모 미술행사가 열린다. 베니스비엔날레, 카셀도큐멘타와 함께 유럽의 3대 미술행사로 꼽히는 세계 최고의 공공미술 축제,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다.
작년 여름, 제자들과 함께 이 축제를 찾았다.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와 5년에 한 번씩 열리는 카셀도큐멘타, 10년에 한 번씩 열리는 뮌스터 조각프로젝트를 한꺼번에 만날 수 있는 기회는 우리에게 정말 큰 축복이었다.
기대한 만큼 눈호사를 누릴 수 있는 전시는 얼마든지 많았다. 이들 축제 중에서도 나의 관심은 10년에 한 번 열리는 뮌스터 프로젝트에 닿아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중세도시 뮌스터를 거대한 야외미술관으로 탈바꿈시키는 조각과 설치미술과 영상미술로 이름이 높다. 1977년에 시작되었으니 40년이 지났지만 이제 다섯 번째 축제를 치렀으니 그 느린 호흡과 여유(?)만으로도 놀라운 미술축제다.
뮌스터 조각프로젝트의 감동은 한둘이 아니었는데,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웠던 것은 뮌스터 시내에서 만나게 되는 수많은 자전거 행렬이었다. 게다가 미술축제가 열리는 동안 시민들은 물론이고 많은 관광객들이 작품 지도를 들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 곳곳에 놓여 있는 작품들을 찾아다니는 모습은 특별한 풍경이었다. 아름다운 도시 풍경에 눈을 빼앗기다보면 또한 마주치게 되는 곳곳에 숨어있는 작품들은 어느새 도시와 한 몸이 되어 관객을 맞고 있었다.
기획자의 의도가 숨어있겠지만 뮌스터 프로젝트의 모든 작품을 단 하루 만에 보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덕분에 시내에 숙소를 잡고 도시의 깊은 향기를 맡으며 머물렀던 뮌스터에서의 ‘그 며칠’은 잊을 수 없는 감동의 시간이 되었다.
오늘에 이르러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뮌스터 프로젝트가 처음부터 성공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뮌스터프로젝트도 초기에는 시민단체와 예술계의 거센 비판과 반대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하지만 당시 뮌스터 시립미술관 관장이었던 클라우스 부스만과 큐레이터 카스퍼 쾨니히의 뮌스터에 대한 애정과 끈질긴 노력이 결국은 긍정적인 여론을 만들어냈다. 보수적인 뮌스터 시민들을 지속적인 예술교육과 대화로 설득해나간 뮌스터 시장의 역할도 뮌스터 프로젝트의 역사적인 걸음을 뗄 수 있게 만든 주된 원동력이었다.
뮌스터에 머무는 동안 불쑥불쑥 내가 살고 있는 전주의 거리가 생각났다. 세계적으로 핫한 여행 도시가 된 전주는 한옥마을 중심의 1000만 명 관광도시로 이름을 올렸다. 불과 몇 년 사이 관광도시로서의 양적 성장은 놀라울 만하다.
그러나 전주가 앞으로도 관광객들이 다시 찾아오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도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뮌스터 거리를 거닐면서 전주가 떠오른 것은 그 때문이었다.
전주 거리 곳곳에 아름다운 미술품이 놓인 거대한 야외미술관. 자전거를 타고 한옥마을과 전라감영과 객사와 풍남문을 거쳐 남부시장에서 미술품을 만나고 팔복동 예술공장의 예술품들과 대화하며, 덕진공원과 전주 곳곳에 숨어있는 쌈지공원과 천변 길에 설치된 작품들로 전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천년 역사가 깃든 전주를 매력적인 도시로 기억할 수 있게 된다면........
긴 안목으로 미술프로젝트를 만들어 세계적인 명소가 된 뮌스터의 사례는 세계적인 문화여행 도시를 꿈꾸는 도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지금은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에서 끝나는 일차원적인 관광이 아니라 몸과 마음이 문화와 예술로 치유되고 정화되는 품격 있는 여행의 시대다. 전주는 그러한 여행의 품격을 갖출 수 있는 좋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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