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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집에 사는 사람들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최아현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

“결혼 하고 싶어.”

이 말을 하면서 친구 A의 목소리는 조금 들떠 있었다.

“어떤 결혼? 사회적 결혼? 제도적 결혼?”

참 아이러니 한 대답이다. B가 그렇게 대답했을 때, 함께 있던 친구들은 모두 폭소를 터뜨렸다. 이 눈치없는 사람아. 너랑 결혼 하고 싶다잖아. 친구들은 B에게 귀여운 면박을 줬다. 이 이상한 대화는 사실 B가 고민하고 있던 가장 큰 문제였다. A와 B는 퀴어 커플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이란 남성과 여성이 가족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위의 대화를 듣고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B에게 결혼과 가족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에게 가족은 어떤 모습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그리는 결혼과 가족은 B의 생각과 많이 닮아 있다.

결혼에 성별이 정해져있다는 뜻은 사실 자격과도 같다. 결혼한 남녀에게는 제도적으로 다양한 권한과 혜택이 주어진다. 피 한방울 섞이지 않았고, 어쩌면 헤어질 수도 있지만 결혼제도를 통해 ‘가족’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는 것이다. 아마 어느 이성애자 커플도 파트너의 결혼하고 싶다는 말에 사회적 결혼인지, 제도적 결혼인지 선택해야 한다는 고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결국 결혼은 여전히 누군가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혹자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끼리 하는 결혼을 말하는 거야? 아니면 다른 나라라도 가서 진짜 법적으로 결혼을 하자는 거야?

나에게 가족은 한 집에 사는 사람들이다. 때로는 이 사람들이 보호자가 되어야 하고, 수혜자가 되기도 한다. 나는 적어도 같은 거주지 안에 묶여서 인간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이라고 부르고 싶다. 1인 가구나 공동체 생활이 늘어나고 있는 요즘에 가족에 대한 재정의는 반드시 필요하다.

나는 ‘룸메이트’라고 부르는 가족과 함께 살고 있다. 사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족과 함께 산 시간보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친구와 더 오래 살았을 것이다. 지난동안 내가 본가에 다시 들어가 살았던 시간은 일 년이 채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족관계등록부라는 끈끈한 서류로 본가에 있는 가족들과 묶여있다. 여전히 멀리 떨어져있는 경우에도 가족으로서, 보호자로서의 권한이 작동되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타지에서 함께 살고 있는 친구에게는 어떤 권한이 있을까? 아무것도 없다. 그저 나와 저녁을 같이 먹고, 출근을 함께 하고, 월세를 나눠 내는 것 말고 그녀에게는 아무런 권한도 없다. 가족이 아니고, 법이 규정하는 테두리 안에서 결혼했거나, 결혼할 예정이 아니라면 보호자로서의 권한 행사 자체가 거부될 수 있다는 뜻이다. 비상시에는 서로를 얼마나 신뢰하고, 얼마나 오래 함께 세월을 보냈는가보다 ‘서류상으로 가족인가?’가 더 중요한 것이다.

현대 사회는 1인 가구와 동거 가구가 급증하고 있다. 이 말은 곧 모두가 결혼이라는 제도 안으로 묶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대안적인 가족제도가 필요하다. 이미 동반자등록법, 시민결합제도, 생활동반자법 등등 각국에서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는 대안가족 제도가 존재한다. 제도 주변부의 사람들이 점점 더 늘고 있다. 마땅히 제도 주변 혹은 밖의 사람들도 제도의 수혜를 누려야만 한다. 바뀐 생활 방식에는 역시 알맞은 제도가 필요하다. 우리는 이제 가족을 자격 없이 선택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다. 다만 적어도 그 고민의 출발선은 같아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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