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림은 생활을 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공간을 만들면, 공간을 유지관리하기 위해서 살림을 해야만 한다. 살림에 며칠만 손을 놓게 되도, 삶을 지속하기 위한 공간이 혐오시설로 변모한다. 이미 쌓여버린 식기들은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기대감보다는 설거지를 해야한다는 부담감을 가지게 한다. 오랜 시간 방치한 쓰레기들은 벌레가 꼬이고 악취가 나 혐오와 불쾌감을 준다. 막힌 배수구와 곰팡이가 핀 화장실은 들어가면서 무심코 욕까지 나온다. 요리하고 싶은 주방과 정돈된 살림살이 나의 청결을 책임지는 화장실은 살림이라는 책임을 완수해야만 받을 수 있는 권리다.
하지만 살림의 가치는 과소평가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림을 기피한다. 기꺼이 해야 하는 것이 아닌 마지못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며 심지어 살림을 해야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대부분 가정에서는 주부가 학교에서는 학생들이 도시에서는 청소부가 해야 하는 일처럼 여기고, 공유하는 공간이 어질러지면 책임자라고 여겨지는 이들에게 불평을 하거나 이의를 제기한다.
공간을 사용하는 누구나가 마땅히 누리고 있지만, 책임은 일부에게 있는 일. 일상에서 살림은 기피되고 전가되어 누군가의 일이 되어 버렸다. 대부분 살림을 대신 해주는데 고마워하기 보다는, 상대의 역할이라 생각하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고 느낄 때 상대를 평가한다. 공동체를 이루기 위한 일상적으로 해야 하는 일에 대해서 그에 걸맞은 대가와 감사함이 없다면 올바른 공동체라 할 수 있을까?
공유공간을 함께 사용하는 공동체에서 살림을 나누는 일은 가장 큰 미션이다. 일단 일을 나누기 이전에 공간의 살림이 어떤 것이 있는지에 대한 이해가 먼저 시작된다. 각자 살면서 살림의 이해 정도가 다양하고 지금 사는 공간에 대해 생소하다. 해야 할 살림이 무엇이 있는지 이야기 하고, 어떻게 해야 좋을지 토론한다. 각자 집 밖에서 해야 할 일들이 많은 구성원들이라 그런지, 살림을 잘하기 위한 토론 보다는 공간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들을 찾고 방식을 정한다. 그렇게 살림을 통해 상태가 유지된다.
적절한 상태의 판단 기준을 어디에 둬야 할까? 나는 일상에서 상대를 염두에 두는 것이라 생각한다. 설거지해서 건조대에 놓인 식기를 다음 식사 전에 마른행주를 사용해 닦아서 정리해 놓는 것은 다음 사용자가 요리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과, 정리를 상대에게 미루지 않도록 하는데 있다. 주요 공유공간인 거실과 부엌을 주로 쓸고 닦는 것은 누군가 시켜서 하는 일이 아닌, 청결에서 오는 쾌적함을 같이 공유하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이다.
공동체에서의 살림은 서로 간 대화도 중요하다. 서로의 생활 패턴과 욕구를 확인하고 적절한 협의를 통해 살림의 정도를 정한다. 늦은 밤 빨래를 널어 놓으려 2층에 올라가는 것은 2층 식구들을 놀라게 한다. 청소기를 사용하는 것은 청결을 위해 필요하지만, 때에 따라 다른 이의 휴식을 방해하기도 한다. 대화하고 협의하지 않는 살림은, 상대에 대한 배려고 했을지라도 상대는 고통을 느끼기도 한다.
달팽이집 생활을 하면서, 살림을 조금씩 배워 나가는 것이, 나를 알아가는 과정이기도 하고 상대방을 인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살림을 통해 일상에서 함께 사는 법을 익히고 있다. 앞으로도 공동체를 위해 살림이라는 미션을 놓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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