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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정도 1000년, 창조와 대안의 땅 '전라북도'] 전라북도, 조선 태조 이성계의 역사와 신화의 땅

△시골출신 이성계, 명궁수로 고려 영웅이 되다.

“태조는 어릴때부터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했다. 어느 날엔 화살 한발로 까마귀 5마리를 한 번에 잡은 적이 있었다.” - ‘용비어천가’-

“동녕부의 추장 고안위가 산성에 웅거하면서 항전을 하자?이성계는 편전(애기살)을 이용하여?성의 병사들 얼굴에 70발을 쏴 모두 맞췄다.” -‘태조실록’-

고려 말 수도 개경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동북면(현재의 함경도) 시골출신 이성계는 스스로 왕이 되어 새로운 왕조 조선을 세웠다. 그는 뛰어난 체력과 무예, 그리고 전쟁을 승리로 이끄는 전략과 전술로 왕이 될 수 있었다.

1913년에 촬영한  영흥(함흥) 준원전 50대의 태조모습 어진과 함흥본궁에 소장되었던 태조의 활
1913년에 촬영한 영흥(함흥) 준원전 50대의 태조모습 어진과 함흥본궁에 소장되었던 태조의 활

이성계는 1335년 화령부(현 영흥)에서 태어나 무예, 특히 궁술에 뛰어나 태조실록과 용비어천가에서도 자주 언급될 정도로 명궁 소리를 들었다. 특히, 고구려 시조 주몽이 도읍한 천혜의 요새터에 자리한 여진족을 공격할 때 편전으로 이들을 제압한 사건은 당시 여진인에게 경외심을 갖게 한 대표 사례였다. 이 같은 고구려의 명궁 전통을 계승한 이성계는 이후 홍건적의 고려침입시 선봉에서 맞서고 여진추장 나하추, 고려반군의 침입때도 궁술로 적장을 쓰러뜨려 고려의 맹장으로 부상하였다.

이 같은 상황에서 새로운 역사창출의 계기는 전라북도권에서 이뤄졌다. 당시 일본은 남북조 시대의 혼란기로 일부 영주들이 군사를 이끌고 고려나 중국 해안을 침입해 노략질을 일삼았다. 특히, 1380년(우왕 6)에는 아지발도(阿只拔都)등이 이끄는 왜구가 함양과 경산, 상주까지 올라와 노략질을 했는데, 이성계가 이들을 운봉에서 맞아 섬멸해 고려의 영웅으로 자리잡게 되었다.

△남원 운봉의 황산대첩(荒山大捷), 신화를 만들다.

1872년 지방도 훈봉현지도에 나타난 아지발도를 사살한 붉은 바위모습의 혈암과 황산, ‘태조대왕대첩왜구지지’
1872년 지방도 훈봉현지도에 나타난 아지발도를 사살한 붉은 바위모습의 혈암과 황산, ‘태조대왕대첩왜구지지’

1380년 8월 최무선의 화포로 왜구 선박 500여척을 대파한 진포대첩은 역설적으로 왜구를 더욱 잔혹하게 만들었다. 앞서 먼저 육지에 상륙한 왜구의 본진은 배를 잃자 독안에 든 쥐가 발악하듯 더욱 기세를 높여 함양, 남원을 거쳐 운봉 인월역에 주둔하며 장차 고려 수도로 북상하겠다며 기세를 높였다. 고려조정은 이때 여진토벌에서 위용을 떨친 이성계장군을 삼도순찰사로 임명해 운봉을 넘어 황산(荒山)에서 왜구를 대적케 하였다.

이때의 전투에서 이성계의 신화가 창출되기 시작한다.

“태조가 남원(南原)에 이르니…해가 이미 기울었다…적장 가운데 나이가 15, 6세 되는 자가 있었는데,…흰말을 타고 창을 휘두르며 말달려 돌진하면 향하는 곳은 모두 쓰러져 감히 당해낼 자가 없었다. 아군에서 아지발도라고 부르며 다투어 피했다.…아지발도는 갑주, 목가리개, 면갑을 썼으므로 활을 쏠 틈이 없었다.” -‘태조실록’-

“내가 투구의 꼭지를 쏘아 투구를 벗길 테니 너(이두란)는 바로 쏴라”하고는 말을 달려 활을 쏘아 투구를 정통으로 맞히니 투구의 끈이 끊어져 투구가 비스듬히 벗겨졌다. 아기발도는 급히 투구를 바로했다. 태조가 다시 쏘니 또 꼭지에 맞아 드디어 투구가 떨어졌다. 이두란이 쏘아 죽였다. 이에 적의 기세가 꺾였다.…드디어 사면이 무너져서 적을 대파하였다.…적들이 통곡하는 소리가 1만 마리의 소가 우는 것 같았다.…냇물이 다 붉게 물들어 6, 7일 동안 색깔이 변하지 않아서 사람들이 마시지 못하고…노획한 말은 1천 6백여 필이며, 병장기는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처음에는 적이 고려의 군사보다 10배나 많았는데 오직 70여인만이 지리산(智異山)으로 달아났다.” -‘태조실록’-

태조실록에 나타난 전황은 구체적 군사수가 명기되지 않았지만 1만에 달하는 왜구를 10분의1에 달하는 이성계군대 1000여명이 물리친 기적적인 대승으로 전해졌다. 이는 사료에 적이 10배나 많았다는 표현과 1만마리 소의 울음 소리같았다는 것이 연결되어 자연 1만여 왜구를 1000명의 이성계군대가 물리친 것으로 확정된 것이다. 10배의 적을 물리친 것은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구국의 영웅의 역할에 부응한 표현이었다.

이에 더해 이성계의 신적 능력이 추가되어 신화가 더욱 다채로와 졌다. 앞서 신궁의 역량에 더해 하늘의 신도 감복하여 함께하는 존재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즉, ’해가 이미 기울은‘ 상황에서 아지발도의 투구를 벗겨 사살한 사건은 신의 도움으로 어두운 밤 달을 끌어올려 아지발도를 활로 맞춰 물리쳤다는 신화로 구성되어 태조의 신격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리고 이를 확정하기 위한 기억장치로 관련지명을 바꿔 역사로 정착시켰다. 즉, 왜구를 물리친 인월의 고려시대 표현은 ‘인월(印月)이었다. 이는 부처의 교화가 세상 곳곳에 비친다는 월인천강(月印千江)에서 따온 불교적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후 조선의 기록에서는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는 의미인 ’인월‘(끌인引+달월月)로 바꾸어 태조의 신화를 역사로 정착시켰다. 또한 불을 이용해 화공으로 은신한 왜구를 물리쳤다고 하여 ‘바람시기(혹은 바람세기)’라 불렀던 곳을 인풍(引風)이라 하여 ‘신의 도움으로 달을 띄우고 바람을 일으키는’ 하늘과 소통하는 능력자 즉, 왕과 같은 존재로 이성계장군이 부각되었다.

이를 보다 입증하기 위한 기억장치로 ‘냇물이 (왜구의)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기록은 냇가의 너럭바위에 피가 스며 붉게 되었다는 피바위 즉, 혈암(血岩)으로 명명되었다. 후일 이곳을 지나던 다산 정약용은 “자세히 살펴보니 이는 본래부터 붉은 돌이지 피로 물들어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었다”라고 간파하고 있었지만 태조신화의 상징물이 되었다.

한편, 아지발도라는 표현은 우리말 아기를 뜻하는 ‘아지’와 몽골어로 영웅을 뜻하는 ‘바투’가 합쳐진 말로 ‘아기장수’라는 고려인의 표현이었다. 즉, 일본이름이 아니라 몽골어 영향을 받은 고려말의 ‘뛰어난 어린 장수’라는 표현이었다. 그런데 아지발도를 처음엔 포용하려한 태조의 마음과 어쩔 수 없이 물리친 사실을 강조하여 태조의 포용력과 부하를 아끼는 모습이 극대화되기도 하였고 이후 선조 때, 고종때 태조고사로서 언급되며 일본에 대한 극일적 상징어로 사용되었다.

△전라북도권에 퍼진 태조의 신화, 조선의 발상지로 자리잡다.

한편 전라북도 진안 마이산은 태조가 천명을 받은 공간으로 확정된다. 태조 이성계가 어려서부터 큰 뜻을 품고 있을 때 어느 날 꿈에 신인(神人)이 나타나 금으로 된 자(금척金尺)을 건네 주면서 ‘이 금척으로 장차 삼한 강토를 헤아려 보라.’고 한다. 이후 황산의 왜구를 격퇴하고서 개선 도중 이성계는 진안 마이산을 들르게 되는데, 이 산을 본 이성계는 깜짝 놀란다. 산의 풍광이 어릴 적 꿈속의 선인으로부터 금척을 받았던 바로 그 곳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그 연유로 마이산은 조선조 창업 때 영산으로 대접받아 태종이 제사지내기도 하였으며 조선창업의 경사와 마이산의 풍광을 노래한 내용이 태조 2년에 제작한 ‘몽금척(夢金尺)’악장과 춤이 만들어졌다.

이 같은 운봉의 황산대첩은 전승이후 “하늘의 계시를 들었다”는 임실의 상이암(上耳庵) 전설과 장수에서는 기도를 드리다가 하늘을 보니 큰 봉황이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는 ‘뜬봉샘’ 설화 등으로 연결되어 전라북도는 태조신화의 중심이 되었다. 특히, 전주 오목대에서 승전연에서 태조가 불렀다는 대풍가와 이에 대비되는 고려 충신 정몽주의 충절의 시는 그 실체와 역사인식의 특성을 함께 거토해야할 역사자원이다.

이같이 전라북도 전역에 전하는 태조의 역사와 신화는 역사적 사건을 기억하는 민중의 역사인식이 함께하고 있다는 점에서 보다 체계적인 조사와 이를 계승 발전시킬 방안이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백제-후백제의 터전에서 고려를 이어 새왕조를 창출한 조선의 발상지 공간으로서 전라북도의 위상과 역사적 의미를 체계화하고 미래 역사의 터전을 만들기 위한 방안이 도민과 함께 마련되어야 한다. /조법종(우석대 역사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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