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를 십여일 앞두고 아버지가 응급실에 가게 되었다. 일단 폐에 물이 차 있었고, 검사를 진행 해보니, 심장 판막 이상과 심장이 크게 부어 있다는 진단이 나왔고, 인공 판막 수술을 해야만 한다고 했다. 무엇보다 76세의 고령이지만, 운동을 즐겨하고 여태 병원 신세를 져 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입원 수술 이런 것들이 매우 낯설게 다가 왔고, 평소에 입원비 수술비를 염려해 아무런 준비를 하지 못한 가족에게 병원비는 크나큰 두려움으로 다가왔다.
수술에 대한 아버지의 두려움과, 차후 생길지도 모른는 수술이후의 환자로서의 삶, 그것을 감당해야 하는 자녀로써의 두려움은 수술을 바로 진행하는게 맞는데도 불구하고, 수술동의를 3일이나 미루게 되었다.
사실상 8시간 정도가 걸리는 큰 수술이기는 하지만, 요즘에는 일반적인 수술이고, 수술이 잘못될 확률이 5% 내외였고 수술 이외에는 다른 방도는 없었다. 수술 비용도 대부분을 의료보험에서 감당하고 있어서, 비용이 큰 부담이기는 하지만, 감당 할 수 있을 정도였다.
다만 막연한 두려움이 나를 망설이게 했던 것 같다. 혹시 모를 큰 수술비용과 수술 후 합병증에 대한 우려, 한번 수술을 하게 되면 병원신세를 계속 지게 된다는 생각, 이런 생각 때문인지 수술에 대한 제대로된 경과가 나오지 않았음에도 병원비에 얼마없는 돈을 탕진하지 말고, 아버지가 좋아하는 것과 가족끼리 추억을 남길 수 있는 것을 하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수술을 하더라도 명절이 코앞이니 명절을 지내고 수술을 하자는 이야기도 있었다.
결과적으로 수술은 명절 전에 하게 되었고, 수술경과는 잘나왔다. 아버지는 다른 합병증 증상은 없었고, 회복도 빠르게 진행되어 수술 후 일주일만에 퇴원하게 되었다. 병원비용 문제도 천만원정도 생각했던 비용과 달리, 의료보험의 적용을 예상보다 많이 받아서, 3백만원 가량의 비용을 부담하게 되었다.
이제는 무사히 넘겼지만, 내가 아버지보다 먼저 지금 생을 마감하지 않는 한, 아버지와의 인연을 정리하지 않는 한, 나는 아버지의 노쇠를 지켜보고 의료비를 감당할 것이다. 이번 경우처럼 막연한 불안감과 할 수 있는 게 돈을 지불하는 것 밖에 없는 무력감도 가지게 될 것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마음속으로 막연한 불안감에 감정적인 선택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빌었다. 의료기술은 상상이상으로 발달하여 마음만 먹는다면, 생명을 더욱 연장 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내 통장의 잔고만큼의 일만 가능하고, 사람의 생은 결국 연장할 수는 있어도 영원할 수 없다. 나에게 최선은 가족 구성원 서로를 상처주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나를 지킬 수 있는 범위에서 선택을 하는 것이었다. 오로지 아버지의 생명의 연장만을 바라고 주변의 모든 것을 쏟아 내는 것은 스스로의 선택이 아닌, 의료기술 혹은 타인에게 책임을 전가 하는 것처럼 나는 생각한다.
이번 일을 글로써 정리해서 기고하는 이유는, 나와 같은 상황에 있는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에게 그때 느꼈던 고민, 피어오르는 감정, 생각의 변화들을 공유하고, 부모를 떠나 보낼지도 모르는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고, 현실적인 고민을 하는 것은 삶의 지속을 위해서 당연하며, 당위적인 선택이란 없고 선택은 놓인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을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와 당신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죄인이 아님을, 세상이 조금 더 나아져 개인에게 너무 무거운 선택을 강요하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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