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말 가난한 동네에서 노동자들을 위한 야학으로 빈민운동을 시작해 40년이 지난 지금, 사회적 경제의 가치를 사회운동으로 이끌고 있는 ‘나눔과 미래’ 송경용이사장을 인터뷰로 만났다.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던 그가 들려준 나눔의 가치는 빛났다. 거기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었다. 그의 삶을 바꾸어놓은 ‘나눔’ 정신이 초등학교 시절 스승이 준 가르침 덕분이었다는 것이었다.
60~70년대 그가 다녔던 전주의 ‘덕진국민학교’는 외곽의 신생학교였다. 온통 주위가 논이었던 학교 운동장은 울퉁불퉁 다듬어지지 않은 맨땅에 비가 오면 물이 차기 일쑤였다. 덕분에 신발주머니에 모래자갈을 가득 담아 나르며 운동장을 일궈야 했던 어린 날은 추억이 됐다. 이수복선생님은 4학년부터 6학년까지 그의 반 담임이었다.
선생님은 항상 가장 일찍 출근을 했다. 아이들은 아침 등굣길에 어김없이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책걸상을 고치거나 운동장을 정리하거나 화단을 가꾸는 선생님을 만났다. 때로는 아이들에게도 나무를 심게 했는데 지금도 몇 그루는 살아남았다. 선생님은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들에게 국화를 화분에 심고 가꾸게 했다. 긁어모은 낙엽에 분뇨를 섞어 거름을 만들어 주었다. 꺾꽂이로 자라난 국화는 쑥쑥 자라 가을이면 화려한 꽃을 피웠다. 선생님은 500~600개나 되는 국화 화분에 막대를 세우고 잘 다듬어 꽃이 가장 활짝 피는 날을 택해 전시회를 열었다. 전시회에 초대 받은 마을 유지(?)와 주민들은 선생님의 권유로 화분을 사갔다. 6학년 졸업식장에서 아이들은 통장을 하나씩 받았다. 선생님이 국화를 판매한 돈을 고루 나누어 차곡차곡 통장에 저금해둔 것이었다. 선생님은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에게 중학교에 꼭 가라고 당부했다. 점심시간이면 선생님은 60여명 아이들 모두 가져온 도시락을 책상위에 올려놓고 함께 먹게 했다. 도시락을 싸오지 못하는 아이들이 여러 명 있었지만 누구 하나 굶지 않게 살피고 나누어 먹게 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친구들을 대하는 일을 하지 못하게 했다.
그는 6학년 졸업식장에서 통장을 받지 못했다. 선생님이 따로 불러 간 교무실에서 받은 그의 통장에는 다른 아이들보다 몇 천원이 더 들어 있었다. 어려워진 제자의 형편을 눈여겨 본 선생님의 배려였다. 어린제자에게 노동과 나눔의 가치를 가르쳐준 스승과 그 가르침을 안아 나눔을 실천하며 사회를 변화시켜가는 제자를 만나는 일. 더없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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