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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천년, 깃발만 나부껴서야

전라도 3개 광역 자치단체장이 2년 전‘전라도 천년기념사업’을 위해 손을 잡았다. 지난해 이맘때 서울에서‘전라도 천년 D-1년’기념식과 심포지엄을 열고,‘2018년 전라도 방문의 해’를 대대적으로 선포했다. 전라도 천년맞이 타종이 새해 첫날 광주 5.18 민주광장에서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뿐이었다. 웅크렸던 전라도‘천년의 잠’을 깨울 듯한 기세가 오간데 없다.

‘전라도 천년’은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고 지역의 새로운 도약을 끌어낼 수 있는 이벤트 재료였다. 전라도 전체가 이리 같은 목표를 향해 힘을 합칠 수 있는 재료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그런 만큼 전라도 싱크탱크들이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모아‘전라도 천년기념사업’을 기획했고, 이에 대한 기대도 컸다.

기념사업은 총 30개로, 3개 시도가 10개씩 주관해 공동 협력하는 형태로 추진해왔다. 전라도 방문의 해 운영, 전라도 천년사 편찬, 새천년 공원 조성, 학술·문화행사 등 크고 작은 프로젝트들이 기획됐다. 일부 사업은 중장기적으로 추진되고 있고, 일부 사업은 나름대로 성과를 나타내기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 사업들이 기대 이하다. 특히 지역민들과 국민들이 체감할 수 있는 사업이 거의 눈에 띄지 않는다.

전라도 천년의 상징적 프로젝트라고 할‘전라도 방문의 해’ 운영만 해도 그렇다. 3개 시도가 참여한 호남권관광진흥협의회가 전북지역 37곳을 포함 전라도 대표관광지 100곳을 선정했으나 정작 관광객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구체적 프로그램을 운영하지 못했다. 전라도의 부정적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기획된 전라도 천년 연중 캠페인도 유명무실하다.

전북은 전라 3개 시·도에서도 상대적으로 더 천년사업의 존재감이 적다. 전북에서 주관하는 사업 대부분이 1회성 학술·문화행사와 기념식에 머무르면서다. 전라감영 복원이나 지덕권 생태사업의 경우 기존 사업의 연장선일 뿐이며, 랜드마크 조성 차원에서 계획된‘전라도 새천년 공원’조성사업 역시 전라도 천년사업과는 사실상 별개 사업으로 추진되는 처지다.

사실‘전라도 천년’을 꺼내 이벤트로 연결시킨 것 자체는 평가받을 만하다. 서울 정도 600년 행사가 1994년 대대적으로 치러진 적이 있으나 국내에서 지명 이름의 기원 연도를 기념 이벤트로 삼은 적은 없다. 경상도 이름은 전라도 보다 300년이 지난 뒤에 나왔고, 충청도·강원도·경기도 등은 그보다 더 뒤에 명명됐다. 이렇게 미답지인 상황에서 전라 3곳의 자치단체가 전라도 천년 기념사업을 위해 뭉친 것만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문제는 당초 기획의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규모 국비 확보를 해서 지역의 랜드마크를 만들지 못해서가 아니다. 전라도 1000년이 무슨 의미인지 아는 국민이 얼마나 될 지조차 의문이다.‘전라도 천년사업’이 지나치게 관 주도, 전시성 중심으로 이뤄지면서 정작 주민들과 괴리된 채 진행되는 데서 나온 문제라고 본다.

천년의 이름을 걸어온 전라도는 문화예술의 꽃을 피우고, 의로움을 떨친 자랑스러운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근현대 산업화 과정에서 차별을 받으며 낙후지역으로 소외받은 동병상련의 공감대도 갖고 있다. ‘전라도 천년’은 바로 전라도민들이 자긍심을 갖고, 전라도에 대한 잘못된 편견을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다.‘전라도 천년’이 전라도민과 출향민에게조차 감응을 주지 못한다면, 어찌 전 국민에게 울림을 줄 수 있겠는가.

전라도 수부였던 전주에서 내일 기념식을 치른다.‘전라도 천년’이 구호와 깃발만 나부껴서야 되겠는가. 3개 광역 단체장만이 아닌, 500만 전라도민이 손을 잡도록 해야 한다. 전라도를 지탱해온 지역민들의 참여가 새로운 천년의 자양분이다. 전라도 천년의 주인공은 현재를 사는 이 땅의 주민이다. 이제부터라도 주민 중심의 전라도 천년사업이 진행되길 바란다.

 

김원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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