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옥 작가의 소설 중에 ‘염소는 힘이 세다’는 작품이 있다. 김승옥이 1966년 쓴 이 소설에서 염소는 주인공 집에서 유일하게 ‘힘이 센 존재’였지만 이웃 생사탕 집 화로를 넘어뜨리는 바람에 그 집 주인에게 허망하게 맞아죽는다. 이로 인해 집안에 ‘힘센 것’이 하나도 없게 되자 주인공의 누나가 성폭행을 당하는 등 주인공 일가가 집밖의 힘센 무리들에게 잇달아 핍박을 당한다는 게 줄거리다.
갑자기 이 소설이 떠오른 것은 최근 ‘사법농단 의혹’사건을 보며 ‘사법부는 정말 힘이 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이번 파동은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으로 전보된 이탄희 판사가 상급자로부터 자신이 소속된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활동을 제약하는 지시를 받자 이에 반발해 사표를 내고 이어 ‘사법부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고발하면서 처음 불거졌다. 이후 진상조사위가 구성되고 김명수 대법원장의 대국민사과에 이어 검찰이 수사에 착수하면서 의혹의 일단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결국엔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이 구속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검찰이 신청한 숱한 압수수색영장이 이례적으로 거의 기각되는 초유의 사태가 이어졌고, 전 대법관 등에 대한 구속영장도 기각됐다. 뿐만 아니라 여당이 중심이 되어 사법농단 의혹 핵심 관련자들에 대한 탄핵을 시도 중이지만 이 또한 자유한국당의 반대로 여의치 않다. 이 정도면 국가권력의 세 축 가운데 유일하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은 권력인 사법부가 최고 권력인 대통령보다도 더 힘이 세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할 것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당한 데 비해 사법부에 대한 탄핵은 유태흥 전 대법원장 탄핵 등 두 차례 시도됐지만 모두 무산된 바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처럼 국민위에 군림하듯 힘이 센 존재임을 드러낸 사법부에 대한 국민들의 시선은 따갑기 그지없다. 한국갤럽 조사에 따르면 지난 해 사법부에 대한 국민신뢰도는 34%로서 군대(43%), 중앙정부(41%), TV방송사(41%)는 물론 경찰(41%)보다도 낮았다. 또한 경제선진국 모임인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 2015년 사법부 신뢰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42개 회원국 중 한국의 신뢰도는 꼴찌나 다름없는 39위였다. 이는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세간의 속설이 이젠 국민들에겐 상식으로 여겨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한때 “그래도 믿을 데는 재판소밖에 없다”는 말처럼 국민들로부터 전폭적인 신뢰를 받던 사법부가 이런 불명예스러운 지경에 처한 요즘 새삼 과거 사법의 양심을 지킨 법조계의 큰 어른들이 그리운 것은 당연한 이치리라.
법조계에선 일찍이 한국근대사법사에서 초대 대법원장 가인 김병로와 ‘검찰의 양심’ 화강 최대교 전 서울고검장, ‘사도법관’ 김홍섭 전 광주고법원장 등 3인을 일컬어 ‘법조 삼성(三聖)’이라 자리매김하고 그들의 꼿꼿한 기개와 엄정한 법집행 정신을 기려왔다.
이 세분은 자랑스럽게도 모두 전북출신이다. 흐린 세상일수록 샛별이 더 빛나듯 권력에 굴하지 않되 국민만을 위해 헌신한 이 분들의 행장(行狀)은 법조인들에게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로스쿨에서 단순한 법률지식만을 가르쳐 법 기술자만을 양성하기보다는 법사상사와 법조윤리, 법조사 등 올바른 법조인상을 배울 수 있는 교과목을 더 늘리고 변호사시험에도 이를 추가하는 방안도 추진해야한다. 법조 삼성의 죽비가 그리워지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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