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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멸의 백제] (260) 13장 동정(東征) 16

글 이원호 / 그림 권휘원

화청이 이끄는 기마군 1만이 미사코성을 지나 우에스기 영지 국경에 닿았을 때는 그로부터 나흘후다. 화청은 나이가 66세, 신라의 김유신과 동년배였지만 이도 몇 개 빠지지 않았고 허리도 곧은 거구다. 수(隨)나라 양제 시절에 태원유수 이연의 막하 장수로 있다가 이연이 반역을 일으키자 반기를 들었던 화청이다. 그러다 가족이 몰사하고 단신으로 백제령 담로로 도망쳤다가 백제해(海)를 건너 본국으로 귀화한 기가 막힌 사연이 있다. 그후로 계백의 심복이 되어 고구려와 당의 전쟁때 안시성에서 이연의 손자 이치(李治)가 이끄는 당군을 물리쳤다. 그러다 이제 왜국에까지 건너와 계백 휘하의 영주가 되었으니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노부사다는 기마군 5천이라고 하지만 전투병력은 3천 남짓입니다.”

정찰하고 돌아온 복위가 보고했다.

“나머지는 치중병, 사역병들입니다.”

복위는 중원의 백제령 담로 출신이다. 화청과 고향이 가까워서 심복 무장이 되어 있었는데 담로에서부터 기마군 생활을 해서 지금은 기마군 대장중의 하나다. 45세, 9품 고덕(固德) 벼슬로 계백을 따라 왜국으로 건너왔지만 지금은 1천 기마군을 거느린 무장, 화청의 영지에서 3천석을 받는 중신(重臣)이 되었다. 화청이 쓴웃음을 지었다.

“이놈들 기마군 체제나 전술이 우리보다 1백년은 뒤졌다.”

“대륙에서는 기마군간 전투가 매일 일어나지만 이곳은 산이 많고 골짜기가 깊어서 기마군 이동이 적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화청이 주름진 얼굴을 펴고 웃었다. 골짜기에 주둔한 총사령의 진막 안이다. 안에는 화청과 복위 등 대여섯의 무장이 둘러앉아 막 저녁을 마친 참이다. 술시(오후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진막의 기둥에 양초를 매달아 놓았다. 그때 무장 하나가 물었다.

“장군, 노부사다의 기마군이 50리(20km) 거리에 있습니다. 단숨에 짓밟지 않고 이곳에서 머무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주군의 명령이다.”

화청은 이제 계백을 주군이라고 부른다.

보료에 등을 기대고 앉은 화청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누가 그 이유를 말해보라.”

무장들을 둘러본 화청이 말을 이었다.

“주군께서 지시를 할 때까지 이곳에서 대기하라고 하셨다.”

그때 무장 하나가 화청을 보았다.

“노부사다가 공격 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잠깐 시선을 주었던 화청이 다른 무장들을 보았다.

“또 없느냐?”

“아군의 위용에 압도된 우에스기 가신들이 이제 우에스기까지 죽임을 당한터라 투항해오기를 기다리는 것입니까?”

무장 하나가 묻자 화청이 이번에도 가타부타 대답을 하지 않았다. 우에스기가 오오다숲에서 중신, 아들과 함께 ‘사냥’을 당했다는 것은 이미 화청도 알고 있는 것이다. 지금 계백도 오오다 숲에서 움직이지 않는다. 그때 복위가 입을 열었다.

“우에스기가 죽고 나서 37명이나 된다는 아들, 친척, 가신들이 혼란에 빠져있을 것 입니다. 지금 우에스기의 거성인 토요야마성은 내분에 휩싸여있겠지요.”

화청의 시선을 받은 복위가 정색했다.

“우에스기 내부에서 정리가 되도록 기다리는 것 아닙니까?”

그때 화청이 머리를 끄덕였다.

“그렇다. 우리 칼에 피를 묻힐 필요가 없어.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진정한 승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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