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공동체 내에서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을 도모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일까? 크게 답하면 돈과 영향력(권력)일 것이다. 그마저도 중산층과 서민들에게는 먼 얘기다. 보통 사람들에게는 먹고 살면서 자식 가르치고 노후를 걱정하지 않을 정도의 소소한 경제적 윤택함과 무시당하지 않을 만큼의 직업 정도면 족할 뿐이다.
드라마 SKY 캐슬과 영화 극한직업이 흥행에 성공했다. 두 작품에는 우리사회 욕망의 민낯과 현실의 희화화가 잘 그려져 있다. SKY 캐슬에는 한국사회 교육시스템 하에서 사회경제적 최상류층의 기득권을 대물림하기 위한 몸부림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흙수저 출신이 금수저들 틈에 끼기 위한 모략과 위선, 좌절의 처연함도 배어 있다. 반면 극한직업에는 ‘치킨집’으로 대별되는 현 시기 한국 서민층의 종착지가 희극적으로 묘사되었다. 원 없이 웃고 극장을 나오지만 극장 밖 현실은 곧장 웃음기를 닦아내버린다.
알버트 허쉬만은 사회구성원들이 자신이 속한 공동체에 대해 나타내는 반응을 통찰력 있게 연구했다. 크게 세 가지 반응을 보인다는 것이다. 첫째는 사회로부터의 도피(Exit)다. 이도저도 안되니 차라리 떠나버린다는 것이다. 둘째는 사회에 대한 저항(Voice)이다. 쉽게 떠날 수 있는 형편도 못되면 몸부림쳐 저항할 수밖에 없다. 셋째는 사회시스템을 수호하기 위한 헌신(Loyalty)이다. 기득권을 지키려는 지배층의 반응유형이다.
떠나든, 저항하든, 지키든 저마다의 이익을 둘러싼 갈등의 회오리 속에는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돈과 권력이 유혹의 똬리를 틀고 있다. 돈과 권력을 차지하는 데 실패한 쪽 일부는 떠나버리며 떠날 수 없는 형편의 사람들은 불평 가득한 눈빛으로 저항하며 살아간다.
경쟁이 일상화 된 현대사회에서 정당하고 합법적으로 돈과 권력을 얻는 유일하다시피 한 수단은 ‘교육’이다. 공정한 규칙 하에 실력만 있으면 성과를 낼 수 있는 영역이기 때문이다. 그랬기에 과거 가난하던 시절 보통 사람들도 교육을 통한 사회경제적 신분상승의 사다리를 오를 수 있었다. 그런데 부유하고 풍요해진 오늘날 누군가 그 사다리를 발로 차 버렸다. 그 누구는 바로 국가(정부)다. 백년지대계 운운하며 교육개혁을 목청껏 외쳐대던 역대 정부들 모두 결과적으로 교육개혁에 실패했다. 그 결과 대한민국은 사교육공화국이 되어버렸고 SKY 캐슬로 가기 위한 좁디좁은 비상구를 향해 온 국민이 내달리는 세상이 되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을 거쳐 사회진출에 이르기까지 그 과정 속에서 우리나라 교육은 반칙과 부패가 횡행하는 총체적 부패공화국의 산실이 되어 버렸다.
필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30여 년 전 지방 일반인문계 고등학교에서는 고3 전교생 약 6백여 명 중 소위 SKY에 적은 해는 30여 명 많은 해는 40여 명 정도가 진학했다. 사교육 없이 야간자율학습만 해도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손가락에 꼽을 정도여서 학교 앞에 SKY합격생의 실명이 적힌 현수막이 내걸릴 정도다.
현 정부도 붕괴된 공교육시스템 회복을 기치로 야심차게 출발했다. 그런데 지금 어디쯤에 와 있는가? 아무리 봐도 교육개혁을 위한 아젠다와 실행정책들은 보이지 않는다. 교육개혁의 길에 가장 앞서 달려 나가야 할 교육부는 대체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교육개혁이 소수 SKY 캐슬층의 욕망에만 부응하고 다수 극한직업층의 혁신 요구를 무시하면 개천에서 용이 날 수 있는 나라다운 나라로 가는 마지막 비상구는 닫혀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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