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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민련과 민평당

김원용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김원용 논설위원 겸 선임기자

정당의 이합집산 과정에서 제2의 자민련이 될 것이라고 하면 심한 욕으로 치부된다. 이념이나 정강도 뚜렷하지 않은 채 보스정치와 지역주의에 의존한 채 연명하다가 결국 슬그머니 사라질 정당이라는 뜻으로 보통 사용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자민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그리 호락호락한 정당이 아니었다. 창당 직후 지방선거에서 충청권을 싹쓸이 했고, 1997년 대선에서는‘DJP후보단일화’로 정권 교체에 기여하며 2년간 공동여당으로서 권력의 한 축을 담당하기도 했다. 이후 두 차례 총선을 거치며 군소정당으로 전락했고, 당의 실질적‘오너’였던 김종필 총재의 정계은퇴와 함께 결국 한나라당으로 흡수됐다.

자민련은 비록 역사 속으로 사라졌으나 정권창출에 큰 역할을 했고, 양당 체제 속에 자그마치 20년 넘게 생명력을 유지했던 정당이다. 오늘의 거대 정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자유한국당만 하더라도 20년 사이 분열과 통합을 거듭했으며, 당명을 바꾼 것만도 부지기수다. 그럼에도 정당을 폄하랄 때 왜‘자민련 꼴이 난다’고 할까. 이는 자민련이 남긴 정치적 유산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자민련이 지역주의의 링거를 달고 오랫동안 연명을 했으나 뚜렷한 정치적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철수 전 대표를 중심으로 국민의당이 창당됐을 때 호남의 자민련이 될 것으로 보는 부정적 시각이 많았다. 그럼에도 새 정당에 자민련과 차별화 될 수 있는 요소들도 있었다. 구심점이었던 JP가 지는 해였다면, 안철수는 떠오르는 샛별이었다. 안철수에 대해 호남만이 아닌, 국민적 신망과 기대가 컸다. 합리적 개혁주의를 표방하면서 새로운 정치에 대한 희망도 던져줬다.

실제 국민의당은 창당 2개월 만에 치러진 20대 총선에서 38석을 확보하며 성공적인 출발을 알렸다. 호남지역 28석 중 23석을 석권하고, 정당비례투표에서도 당시 제1야당인 민주당보다 높은 득표율을 올렸다. 그러나 국민의당의 기세는 오래가지 못했다. 대선을 거치면서 당이 분열되고, 결국 창당 1년 만에 문을 닫았다.‘자민련 꼴’대신‘국민의당 꼴’이라는 빈정거림도 감수해야 할 만큼 짧은 정치적 실험으로 끝난 것이다.

국민의당 의원들이 민평당과 바른미래당으로 갈라졌으나 어느 당이 국민의당 적통인지도 불분명하다. 창당의 중심에 있었던 안철수 전 대표를 기준으로 할 경우 바미당이 적통이겠으나 바른정당과 통합되면서 국민의당 색깔이 오간데 없고, 민평당 역시 새로운 정강정책을 표방하면서 국민의당과 단절했다. 국민의당 자체 아무런 정치적 유산도 남기지 못한 채 공중분해된 셈이다.

그럼에도 민평당은 여전히 전북에서 살아 있는 권력이다. 전북 지역구 국회의원 10명 중 절반인 5명이 만평당 소속이다. 그러나 지역에서조차 민평당의 존재감이 없다. 물론 민평당의 존립 자체가 버거운 상황임을 모르는 바 아니다. 원내교섭단체 구성을 못할 정도로 군소 정당으로 전락했고, 지지기반인 전북에서도 한자리수 지지율이 나오지 않는 마당에 의욕을 말하는 것이 사치일 수도 있다. 오죽하면 창당 1주년 기념행사도 치르지 못했을까.

민평당은 이대로 주저앉아서는 안 된다. 민평당은 전북도민들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국민의당이 해체됐다고 해서 지역 유권자들이 보낸 지지와 성원을 외면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전북의 유권자들이 국민의당을 선택했던 것은 늘 지지했던 민주당이 제역할을 하지 못한 데 대한 염증 때문이었다. 선거 때마다 항상 선택지가 없었던 전북 유권자들에게 국민의당이 대안이었다. 도로 민주당이 될 경우 지역 정치발전은 또다시 과거로 후퇴할 수밖에 없다. 전북에서 야당이 살아야 하는 이유다. 그 중심에 있는 민평당이 이리 무기력에 빠져서야 되겠는가. 내년 총선이 아직 1년이나 남았다. 시대적 소명이 끝나 총선에서 참패를 당할지라도 한 번쯤 뜨겁게 불꽃은 피워야지 않겠는가. 최소한‘호민련’이라도 되려는 열정을 보이는 게 호남 유권자에 대한 민평당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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