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에서 10일까지 남원 광한루 앞마당에서 농악 잔치가 열렸다. 올해 춘향제 기념으로 전라도, 경상도, 강원도 농악이 삼도농악한마당을 펼친 것이다. 8일에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8호 김천금릉빗내농악이 선보였다. 경상도 농악답게 북 중심의 힘차고 남성적인 가락과 전투적인 진풀이를 볼 수 있었다. 9일에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제15-2호 원주매지농악이 공연했다. 태평소 소리에서 강원도 특유의 메나리조 느낌을 깊게 느낄 수 있었고 칠채가락이 경기 지역 농악과 비슷한 듯하면서도 달라서 흥미로웠다. 삼도농악 공연 마지막 날인 10일에는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7-4호 남원농악이 공연했다. 전라도 특유의 멋스러움과 좌도농악 고유의 상모놀음을 선보였다.
농악이 2014년 11월에 유네스코 인류무형유산으로 선정된 지 5년이 흘렀다. 당시 많은 관심이 언론, 학계, 지자체 등으로부터 경쟁적으로 쏟아졌다. 화려한 축제가 지나가면 여전한 일상이 찾아오듯, 등재 후 몇 년이 지난 지금 농악인들의 삶은 예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어 보인다.
농악의 오랜 역사 속에서 농악인들은 묵묵히 살아왔고 또 그렇게 묵묵하게 살아갈 것이다. 지난 세월 동안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현실이 녹록치는 않았다. 그들이 살아온 20세기, 살아갈 21세기를 김정헌 박사와 살펴보았다. 김정헌 박사는 현재 남원시립 국악연수원 농악반 강사로 재직 중이고, 전라북도 무형문화재 7-4호 남원농악 전수교육조교다. 농악 실기인 중에서 최초로 농악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올해 삼도농악 한마당 남원농악 공연 때 상쇠이기도 했다.
- 농악이 가진 총체적 성격에 대해 어떻게 생각십니까.
“총체성에 대해 오히려 비판적으로 생각해 본다면 아직 분화되지 않은 미분화된 형태로 볼 수도 있어요. 원시종합예술적 성격일 수 있다는 것이죠. 총체성과 세분화, 전문화에 대해서 좀 더 냉정하게 바라 볼 필요가 있습니다. 농악은 물론 음악, 노래, 춤이 어우러진 민속악이고 종합예술입니다. 하지만 그 중심은 음악이죠. 음악이 80% 정도, 진법이나 연희, 노래 등은 20% 정도인 것이 사실이죠. 음악, 노래, 춤의 종합성은 맞되 음악의 중심성은 인정해야 한다고 봅니다.”
- 총체성이 원시적 성격일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기는 힘듭니다. 하지만 여러 구성 요소 간의 관계와 역할을 살펴야한다는 지적에는 공감이 갑니다.
“농악이 가진 음악성, 주된 요소로서의 음악적 요소에 대해 고민한 산물이 사물놀이입니다. 사물놀이는 농악의 대중화, 국악의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죠. 사물놀이가 탄생할 당시가 20세기였는데, 사물놀이는 그렇게 그 전과 달라진 20세기 예술환경에 적응했습니다. 판소리는 창극이라는 돌파구를 통해서 20세기에 적응했죠. 20세기에 대한 적응은 전문화가 화두였고, 이는 곧 상품화될 수 있는가 였습니다. 그 이전의 왕정시기에서 자본주의 시장으로 예술환경은 바뀌었고 모든 예술은 경쟁에 직면하게 되었죠. 흥망성쇠의 국면들을 맞이한 것이죠. 신파극이 그렇게 많은 인기를 누렸지만 영화의 등장으로 쇠락하였습니다. 1940년대에서 1970년대까지 전국을 누볐던 포장걸립, 특히 여성농악단의 시대는 결국 TV의 보급으로 막을 내렸다고 볼 수 있죠.”
- 농악이 거쳐 온 20세기에 대한 적응기에 대해 좀 더 묻고 싶습니다.
“크게 두 가지 흐름을 말할 수 있습니다. 농악은 여성농악단의 시대가 1970년대에 TV의 보급으로 막을 내리면서 한 고비를 맞이했었죠. 그러다가 1980년대 두 축의 국면을 맞이합니다. 한 축은 사물놀이의 등장이고 또 한 축은 대학생을 주축으로 대거 각 지역 농악전수관을 찾아 농악을 배우는‘전수관 농악’시대의 시작이었죠. 전수관농악은 알다시피 민중문화운동과 연관 됩니다. 두 축을 중심으로 농악은 20세기를 지나 왔습니다.
- 그렇다면 21세기의 농악은 어떨까요.
“휴대폰, SNS 등 또 다른 환경에 적응하는 정제과정에 직면할 것입니다. 남원농악에는 판굿에서 뒤굿 또는 후굿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노래, 춤, 놀이, 연극 등 다양한 연희적 요소가 주를 이루는 대목이죠. 명칭은 다르지만 여러 농악에 이런 형태의 굿절차가 있습니다. 이 농악들에서 문화재로서 뒤굿은 존재할 것입니다. 하지만 공연물로서 뒤굿은 사라질 수 있다고 봅니다. 지신밟기도 사라질지 모릅니다. 지신밟기에 꼭 필요한 고사소리가 있습니다. 오늘날 고사소리를 배우고자 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21세기 예술환경에서 고사소리에 대한 수요가 없는 것이죠. 결국 음악이 더욱 세련되고 정제화된 형태로 농악은 변모할 것입니다. 음악과 연관된 발 디딤이나 진법, 웃놀음도 더불어 정제화될 것이고요. 냉정하게 바라 본 21세기 농악의 모습은 이렇습니다. 장밋빛은 아니지만 염세적이지도 않죠.”
그 냉정한 전망 속에서 김 박사 자신은 어디에 위치하는 지 물었다. 농악이 맞이할 녹록치 않은 21세기에서 한 발 물러나려 하지는 않는지 궁금했다. 그는 간결하게 말했다. “뒤굿까지 지키는 마지막 사람은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라고. /조세훈 문화인류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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