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누구나 오래 살고 싶은 욕망이 있다. 불로장생을 꿈꾸며 ‘불로초’를 찾았던 진시황도 결국 영생은 얻지 못하고 그의 사후를 지키는 거대한 병마용만 남겼을 뿐이다. 불로장생은 이룰 수 없지만 편안한 노후는 개인과 사회가 함께 잘 준비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세계 현대사를 희극으로 버무린 소설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에서 주인공은 복지국가 스웨덴의 요양원을 거부하고 ‘세상 밖으로’ 나와 새로운 모험을 떠난다. 반면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에서 폐지 수레를 끌고 가는 노인의 사진은 우리나라 노후실태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이다. 복지국가 스웨덴에서는 100세 시대가 축복일지 모르나 노후빈곤국가 대한민국에선 재앙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100세 시대’ 구호에는 기대와 불안이 교차한다.
박근혜 정부 때 ‘안티 에이징’을 내세워 피부노화방지기술을 국가연구개발사업으로 추진한 적이 있다. 탄핵 사태가 벌어지고 그 무슨 시술을 청와대에서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나서야 그 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이해가 되었다. 소수의 욕망을 상대로 돈을 벌겠다는 분야에 국민 혈세를 쓰는 것이 진짜 누수다. 국가가 폐지 줍는 노인의 문제는 해결하지 않고 젊음 유지의 피부를 연구하는 사회라면 국민 대다수의 편안한 노후는 보장받을 수 없을 것이다.
노후는 개인 혼자 감당하기에는 한계가 있고 사회, 국가가 같이 준비해야 한다. 치매국가책임제 도입과 국민연금 소득보장 강화를 위한 연금제도 개편,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를 위한 ‘문재인 케어’는 모두 국가의 책임을 다하기 위한 정책이다. 혜택은 포퓰리즘이고 부담은 폭탄이라는 주장이 먹히는 한 국가의 역할은 약화된다. 보험료 폭탄, 세금 폭탄론을 거론하는 순간, 그들은 의도적이든 아니든 국민의 이익이 아닌 보험회사의 이해를 대변하게 된다. 이런 공격으로부터 국가 책임과 사회의 역할을 높이기 위해서는 사회보장제도의 지속가능성을 제고하는 사회적 비용부담에 대한 해법을 내놓는 것이 중요하다.
가장 중요한 해결책은 국민의 이중부담을 줄이는 것이다. 국민들은 국민연금 등 공적연금에 28조 원을 부담하면서 추가로 개인연금 등에 35조 원을 지불하고 있다. 건강보험에는 세대 당 10만 원 정도의 보험료를 납부하지만, 각종 민간의료보험에는 그보다 세 배 많은 30만원 수준을 지불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영리를 추구하는 민간기업의 어떤 보험상품도 국가가 국민을 위해 운영하는 국민연금과 건강보험 같은 사회보장제도보다 더 좋은 혜택을 주지 않는다. 국민입장에서 보면 왼쪽 주머니를 정부를 믿고 내놨는데 또 오른쪽 주머니까지 보험시장에 털리면서도 제대로 된 노후보장, 의료보장이 안 된다면 불만은 계속 쌓여갈 것이다.
국민의 불필요한 사적 지출을 줄이고 대신 공적부담을 늘려 혜택을 높이는 것이 국민의 총 부담을 늘리지 않으면서 보장수준을 높일 수 있는 해법이다. 백세시대 재정수요를 감당하는 또 하나의 해결책이 있다. 늘어나는 기대여명에 따라 국민연금과 건강보험제도의 역할을 잘 분담하는 것이다. 이를테면 80세까지는 일정 소득을 바탕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활발한 사회활동을 돕는데 제도의 초점을 맞추고, 80세가 넘어가면 소득보다는 의료보장의 역할이 더 커지는 것에 주목해 해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다.
100세를 살아야 축복받은 것이고 100세까지 사는 것은 재앙이라는 인식은 모두 바람직한 태도가 아니다. 노후가 축복이 되려면 개인에게 모든 것을 맡기지 않고 사회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한다는 공동체 인식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얼마나 오래 사느냐가 아니라 어떻게 사느냐가 사회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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