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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의 흔적, 역사가 되다] 사진에서 근대도시의 탄생을 엿보다

아코디언과 기타를 즐긴 근대도시의 주인공들 / 김인곤 기증
아코디언과 기타를 즐긴 근대도시의 주인공들 / 김인곤 기증

전주 민간기록물 ‘정신의 숲’으로 들어온 빛바랜 가족사진 앨범에는 근현대 시기에 대한 역사와 문화에 관한 정보가 적지 않게 들어있다. 일제 식민지 시기 그리고 그 이후, 사진 속 주인공들의 모습과 함께 당시 도시 경관과 당대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담겨 있다. 사진 속 주인공들이 어디에서 사진을 찍었는지? 누구와 사진을 찍었는지? 왜 사진을 찍었는지 등등을 헤아려 보면, 전주의 근현대 사회문화사가 어렴풋이 엮어진다. 이때가 바로 개인과 가족의 사적 기록이 공적 기록으로서 의미를 가지게 되는 순간이다.

△도시인의 욕망, 경제적 생활인 모습 담겨

전주남문교회 앞 장례식 / 이지현 기증
전주남문교회 앞 장례식 / 이지현 기증

18~19세기부터 시작된 서세동점(西勢東占)의 시대는 마침내 조선을 멸망시키고, 일본의 식민 세력의 지배 아래 들게 했다. 서양으로부터 새로운 문물이 들어오면서 조선말 개화운동이 시작되었지만, 성공하지 못한 채 일제의 식민 정권 아래서 근대사조가 물밀 듯이 들이닥치게 되었다. 근대 도시가 생겨나면서 과거 조선의 전통적인 도시도 탈바꿈이 시작되었다. 사회의 총체적인 변혁은 각별히 도시인의 삶을 크게 바꾸었다. 도시 경관에 나타난 변화가 눈에 두드러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 속에 살던 도시인들의 삶은 소리 없는 아우성 속에서 지축이 흔들리는 경험을 하고 있었다.

근대 도시가 형성되어가는 길목에서 사진의 배경이 된 건물, 간판, 휘장, 길거리 풍경, 자연경관, 사진관의 키치(kitsch) 등이 미장센으로만 볼 수 없는 요소들이다.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는 지나간 시간 속에서만 훔쳐볼 수 있는 흥미로운 증거물이기 때문이다. 외형적인 구조물이나 경관을 포함한 지리적인 정보가 도시의 역사를 전부 말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는 증거임에는 틀림없다. 미장센을 실증으로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지고 잃어버린 시간과 인물을 찾아내게 되면 이 사진들은 과거의 이야기를 되살려내는 훌륭한 역사문화 자료가 된다.

식민정부는 근대적인 개념의 도시계획을 실행하면서 과거의 도시를 변용했고, 때로는 전혀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내기도 했다. 서구적 외형의 관공서, 상공업용 건물이 세워지고, 주거지가 구획되었으며 도로가 정비되었다. 이러한 신도시 건설이 이루어졌던 증거 자료들이 사진 속에 들어 있다. 또한 도시에 형성되기 시작한 새로운 공간 속에서 만들어지는 관계의 구조도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이 근대 도시에 어느 사이 조선인들이 모여 사는 지역과 일본 거류 민촌이 확연하게 구분되어, 민족적 차별이 공간적으로 상징화되어 가고 있었다. 달라진 도시 경관 속에서 우리는 도시의 근대성을 바라본다. 식민주의나 민족주의와 같은 거대 이념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실천성, 욕망, 그리고 경제적 생활인의 모습이 앨범 속에 담겨 있다.

△전주 바로보기, 도시와 농촌 오가는 사람들 행적 봐야

1940년대 전주부내직장대항 야구대회 / 이지현 기증
1940년대 전주부내직장대항 야구대회 / 이지현 기증

근대 도시로 부상한 전주에는 토박이들 보다는 이주해온 이들이 더 많았다. 우리는 근대시기 도시 이주민이 크게 증가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노동인구의 증가로만 파악하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는 상업인구의 증가, 지식인층의 증가가 두드러지며, 이 계층의 활동이 근대 도시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기능을 한다는 사실을 간과한다.

근대 도시 전주를 제대로 들여다보려면, 우리의 눈을 크게 떠서 이 도시와 주변 농촌을 오가는 사람들의 행적을 살펴야만 한다. 당대인들-기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도시와 농촌을 넘나들고, 여전히 농촌과의 질긴 끈을 가지고 도시의 삶을 이어왔다. 도시와 농촌, 근대와 전통을 넘나들던 이 경계인들의 의식과 인식을 통해서 도시의 삶을 역동적으로 그려 보아야 한다.

많은 농촌 거주인들이 새로운 생계 수단을 찾아서 기회가 많은 도시로 나왔다. 과거와는 다른 경제·사회생활이 전개되면서, 지금까지 자신들이 지켜온 직업관, 생활관 등이 뿌리 채 뽑히는 경험을 했어야만 했다. 이들은 스스로가 변화의 소용돌이 속 주인공이 되지 않을 수 없었다. 가난한 이든, 부유한 이든 도시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던 것이다.

이들에 대한 기록은 충분하지 않고, 생생하지도 않다. 기록은 있으되 파편적이다. 그래서 추론하거나 기록의 조각들을 맞출 수밖에 없는데 반해서 한 개인의 연작 생애 사진 그리고 그에 관한 이야기는 생생하며, 촘촘하다. 도시의 외형에서 경험의 내면으로, 도시인의 삶을 순환적이며 포괄적인 관점을 가지고 볼 수 있는 지점이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의 사진 속 주인공은 우리 곁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단지 사진 속에서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려고만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귀는 있으되 들을 수는 없다. 우리는 무성영화 시대 변사를 만나듯, 사진의 변사를 만나야만 한다. 그래야 그가 건네려고 하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사진 속 주인공의 후손들이 변사가 되어서 선친의 목소리를 대변해 준다. 근대 도시로 이주해서 살았던 선친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구성지게 풀어낸다.

그렇지만, 이제 가족 앨범을 보면서 구성지게 읊어 줄 변사들도 하나 둘 무대를 떠나고 있다. 떠나기 전에 변사를 만나야 하나, 우리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이야기의 가치를, 존재의 가치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기증된 사진과 앨범이 중요하듯, 그 속에 담긴 이야기를 전할 수 있는 변사들과 그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청자(聽者)가 필요하다. 서 말의 구슬도 꿰어야만 보석이 되듯 수천, 수만 장의 사진과 그 이야기들을 꿰어야만 자료로서의 보물이 되지 않을까.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그 일을 우리가 부지런히 시작해 보아야 하지 않을까.

/함한희 전주시 민간기록물관리위원회 위원·전북대학교 전북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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