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병기 논설위원
며칠전 전북도의회에서는 당원 명부 유출 등과 관련해 도의원 2명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졌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원 관리를 위해 민주당 남원·임실·순창 지역 당원 명부 1만여 건을 유출한 의혹에 대한 수사의 일환이다. 왜 이런 일이 있었을까.
시계추를 지금부터 꼭 10년전인 2009년 봄으로 돌려보자. 선거법 위반 등으로 전주 완산갑 이무영, 덕진 김세웅 국회의원이 물러나면서 재보궐 선거가 치러졌는데 놀랍게도 민주당 공천을 받았던 완산갑 이광철, 덕진 김근식 후보가 낙선하고 소위 무소속 연대를 꾸렸던 정동영-신건 후보가 당선되는 이변이 일어났다. 집권당 대선 후보까지 지낸 정동영 후보의 당선은 그렇다 쳐도 지역에서 활동한지 한달여 밖에 되지 않은 신건 후보의 당선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로부터 1년 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일이 벌어졌다. 정동영, 신건 의원이 민주당에 복당한 뒤 지방의원들은 그동안 누구를 주군으로 모셨는가에 따라 신세가 정반대가 됐다. 소위 ‘독수리 5형제’의 출현이 바로 그것이다.
민주당 공천자를 밀었던 당시 김성주 도의원과 이명연·국주영은·양용모·유영국 전주시의원 등 5명이 오히려 낙천 위기에 몰린 것이다. 이들은 정동영 의원과 경쟁관계였던 정세균 당 대표를 찾아가 “살려달라”고 호소했고, 우여곡절 끝에 결국 전략공천을 받으면서 기사회생하게 된다. 사람들은 이들 5명을 일컬어 ‘독수리 5형제’라고 불렀다. 당시 도의원 이었던 김성주 의원 사무실에는 커다란 표구 하나가 있었다.‘이 또한 지나가리라’좋은 일도, 나쁜 일도 시간이 지나면 다 해결된다는 뜻이다. 독수리 5형제 사건은 극히 미시적으로 보면 전북 헤게모니를 둘러싼 정세균-정동영 간 힘겨루기였다. 벌써 많은 시간이 지났으나 이 일은 전북 정치권이 얼마만큼 분열돼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에 불과하다. 정치와 권력의 세계는 철저히 견제의 법칙이 바탕에 깔려있지만 국회의원 공천도 아니고 지방의원 몇명이 국정을 이끌어가는 정세균-정동영 간의 힘겨루기 대상이 됐다는게 지금 생각해봐도 놀랍다.
광복 이후 한민당의 주축은 전북 정치인들이었다. 인촌 김성수와 가인 김병로. 근촌 백관수. 백봉 라용균 등이 바로 그들이다. 이후 야당 거목인 이철승, 윤제술 등은 누가 뭐라고 해도 전북의 보스 역할을 톡톡히 했다. 하지만 197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북은 급전직하한다. 산업화 과정에서 뒤쳐지고, 도민의식이 빠른 시대적 변화를 뒤따라가지 못한 점도 있지만, 한편으론 도내 정치권의 분열도 전북의 낙후를 불러온 한가지 요인으로 꼽힌다. 3김과의 대결에서 소석 이철승이 밀려나면서 전북의 위상은 크게 뒤떨어졌다. 대통령 꿈을 꾸었던 김대중, 김영삼과 달리 소석은 집권의 꿈을 일찌감치 버리면서 전북은 야당에서도 변방으로 밀려났다. 양김이 위세를 부리던 1980년대, 전북은 정치적으로 기가막힌 상황에 직면했다. DJ는 소석을 치기위해 손주항을 내세웠고, 손주항을 꺾기위해 장영달을 내보냈다. 그런가하면 김원기를 제거하기 위해 윤철상을 내보냈다. 그후 전북의 맹주는 없어졌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단순히 중앙무대에서 권력자가 부리기 쉬운 ‘월급쟁이 고용 사장’이 오고 갈 뿐이었다.오늘날 전북은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신세가 됐다. 지역 언론의 주요 기사 제목은 늘 ‘시급’과 ‘절실’로 끝난다. 사업 시행이 시급하고, 예산 확보가 절실하다는 의미다. 도민들의 의식은 희망과 기대 보다는 낙담과 분노로 점철돼 있다. 강력한 정치 지도자가 잘 이끌어주고 후배들이 뒤를 잘 따라줘야 하는데 전북 정치권은 이와 다르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사분오열 돼 있고, 민평당은 언제 갈라설지 모르는 지경이다. 일찌감치 링컨 대통령은 말했다. “분열된 집안은 오래갈 수 없다”고 말이다. 정치인은 물론, 도민 모두가 잘 생각해봐야 할 경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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