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남원농악이 우리 지역에서 또 하나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예고되었다. 지정 대상이 되는 기·예능은 악기연주, 판굿, 개인놀이, 부들상모 제작이다. 특이한 점은 ‘부들상모 제작’이었다. 악기연주나 판굿, 개인놀이 등은 일반적이나 농악소품을 만드는 기술까지 포함한 경우는 쉽게 접할 수 없었다. 부들상모란 구슬 속에 명주실을 꼬아 만든 끈을 넣고 끝에 날짐승의 깃털로 만든 부포를 달아 만든 상모를 말한다. 남원농악 수장고 염창수 씨가 상쇠 류명철 명인과 소고잽이 고 홍유봉 선생에게 제작 기술을 배워 전승하고 있다. 고창농악의 경우도 수소고 임성준 씨가 고 유만종 선생에게 고깔소고춤에 쓰이는 소고 제작기술을 배워서 계승하고 있다. 각자의 전통과 색깔을 간직한 농악소품은 농악구성의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진다.
상모, 소고 등의 제작 기술은 일종의 도구제작 지식으로서 유네스코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Intangible Cultural Heritage of Humanity)으로 주목하는 부분 중 하나다. 21세기 들어 유네스코에서 지정하는 인류무형문화유산이 국내·외적으로 관심 받고 있다.
인류무형문화유산이란 문화재청의 설명에 의하면 “2003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 보호 협약에 의거하여 문화적 다양성과 창의성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표목록 또는 긴급목록에 각국의 무형유산을 등재하는 제도”로서 “지금은 세계유산과 마찬가지로 정부간 협약으로 발전” 되었다. 우리나라의 인류무형문화유산은 판소리(2003), 강강술래(2009), 아리랑(2012), 김장문화(2013), 농악(2014), 씨름(2018) 등 총 20개다. 특히 씨름은 ‘한국 전통 레슬링, 씨름’이라는 명칭으로 2018년에 사상처음으로 남북공동 등재가 되어 화제가 되었다.
그간 우리나라에서 무형문화유산은 문화재보호법에 의거하여 보호되었다. 그러나 한계를 보여 2015년에 ‘무형문화재 보전 및 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무형문화재법)이 따로 제정되어 2016년 이후 시행되었다. 한 인터넷 포털에 소개된 국민신문고의 관련 글에서는, 기존의 문화재보호법이 일정한 성과가 있었지만 원형을 유지하도록 하는 원칙 등이 무형문화유산을 창조적으로 계승하는 데는 오히려 저해되었다고 했다. 건물, 그림 등과 같이 일정한 형태를 지닌 유형문화유산은 원형의 모습을 얼마나 그대로 유지, 보존하느냐가 관건일 수 있다. 하지만 사람의 행위나 문화로 이루어지는 무형문화유산은 한 시점에 머무르도록 잡아두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 타당성도 모호하다.
무형문화재법은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이하 유네스코 협약) 취지를 반영하고 있다. 유네스코 협약에서 인류무형문화유산은 “공동체, 집단 및 개인들이 그들의 문화유산의 일부분으로 인식하는 실행, 표출, 표현, 지식 및 기술뿐 아니라 이와 관련된 전달 도구, 사물, 유물 및 문화 공간 모두를 의미”하는 것이다. 범위는 “무형문화유산의 전달체로서의 언어를 포함한 구전 전통 및 표현, 공연 예술, 사회적 실행, 의식, 그리고 축제, 자연과 우주에 대한 지식 및 관습, 전통적 공예 기술”이다.
무형문화유산을 전승하고 향유하는 사람들로서 공동체와 그들의 문화에 주목하고, 이들이 가진 광범위한 지식의 영역까지 관심의 폭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남원농악에서 부들상모제작 기술까지 지정대상이 된 것도 이 흐름의 반영으로 이해된다.
무형문화유산 논의를 국내·외에서 선도해 온 전북대학교 함한희 명예교수를 7월 어느 날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함 교수는 부들상모 제작을 지정 대상으로 삼은 것은 무형문화재를 총체적, 통합적으로 보는 시각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협약의 방향성을 고려하는 추세의 영향이라고 했다. 유네스코 협약에서 주목하는 것은 원형보다는 살아있는 문화이고, 무형문화유산을 간직하고 향유하는 공동체라고 했다. 사람들이 간직한 다양한 지식, 기술 등을 문화의 관점에서 폭넓고 생동감 있게 보려는 것으로 필자는 이해했다. 누가, 왜 하는가에 주목하는 것이다.
바쁜 21세기에 인류무형문화유산이 주목 받는 이유를 물었다. 함 교수는 “무형문화유산은 사람들의 마음을 달래줍니다. 농악이나 줄다리기 등에 사람들이 왜 참여하겠어요? 이걸 통해서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것이지요. 현대인들이 공동체를 더욱 만들고 싶어 해요.” 라며, “무형문화유산은 옛날 거, 원형적인 것 이런 것만이 아니에요. 과거를 가지고 현재를 살면서 미래로 가져가는 것, 미래 삶의 방향성을 찾는 것입니다.” 고 했다. 우리나라 무형문화재 정책이 유네스코 협약 취지에 발맞추려 하곤 있지만 공동체에 주목하지 않는 점, 살아있는 문화 중심이라기보다는 원형, 전형 중심이라는 점이 다르다고 했다.
전주 한옥마을 근처에 가면 유네스코 아태무형유산센터(ICHCAP)를 볼 수 있다. 아시아 태평양 지역 48개 유네스코 회원국들 간의 무형문화유산 교류의 중심이 되는 국제기구다. 그것이 전주에 설립된 것은 한국의 문화적 위상과 전라북도의 풍부한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인정받은 결과다. 2019년 7월의 오늘, 전통예술의 전승도 소수의 예능자 중심에서 다수가 공유하는 현재형의 문화가 되는길로, 원형의 경계에서 생동하는 창조적 계승으로 행보를 넓힐 때다. /조세훈 문화인류학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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