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일본 감정이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작년 10월 대법원이 일제의 강제징용 손해배상 청구 소송 피해자들의 손을 들어주자 일본의 아베 총리가 이는 국제법 상식에 벗어난다면서 우리나라에 대해 경제보복을 가했다. 이에 우리 국민들은 과거 일제의 참혹한 식민 지배에 대한 사과도 없고, 사법부의 정당한 판결을 트집 잡아 우리 정부를 공격하고 경제보복을 하는 일본의 뻔뻔함에 분노하게 된 것이다.
이 와중에 일부 보수신문들이 국민감정에 반하고, 일본을 이롭게 하는 기사들을 실은 것을 두고 말들이 많다. 이유 없이 맞고 돌아온 아이 때문에 화가나 옆집과 말다툼하는 판에 빌미를 제공한 우리 아이 잘못이라고 옆집을 옹호해주는 평소 사이좋지 않은 시누이의 몽니라고나 할까. 자칭 1등 신문 조선일보에 비난이 집중되었다. 조선일보는 ‘전략물자가 한국에서 북한으로 유출됐다’는 사실과 다른 보도를 하였고, 한일청구권 협정문제도 일본 주장을 그대로 옮기기까지 하였다. 이런 조선일보의 보도를 일본 극우 언론이 확대 재생산하고, 일본 정부는 이걸 빌미로 수출 규제를 시켰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는 얼마나 옹졸한가”라는 기고문을 일본어판에 “한국인은 얼마나 편협한가”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일본의 한국 투자 1년 새 40%, ‘요즘 한국 기업과 접촉도 꺼려’”기사는 “한국은 무슨 낯짝으로 일본의 투자를 기대하나?”라는 제목으로 바꿔 달았다고 한다.
이쯤 되면 조선일보에게 과연 어느 나라 신문이냐는 물음을 던질 수밖에 없다. 급기야 언론·시민단체가 조선일보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갖고서 “조선일보가 문재인 정부를 비난하고 싶은 마음에 일본의 폭거마저 감싸고 나섰다. 친일언론, 왜곡편파언론, 적폐언론 조선일보는 국민 앞에 사죄하라”고 주장했다.
“모든 것은 변하지만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Everything changes but Nothing changes). 한 때 화제가 되었던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HERMES)의 지면 광고 카피이다. 조선일보가 딱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이 변했지만 조선일보의 친일 감정은 지난 100년 동안 흔들림이 없다. 1920년 송병준 등 친일파들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 조선일보를 창간시켰다. 1924년 민족주의자 신석우에게 경영권이 넘어가면서 조선일보는 잠시 민족지로서 눈부신 활약을 하였다. 그러나 총독부로부터 사사건건 검열과 탄압을 받으면서 심한 경영난에 빠지게 된다. 1933년 조선 최고의 광산왕인 방응모에게 소유권이 넘어가면서부터 조선일보는 철저히 친일신문으로 변절하고 만다. 1등 신문 조선일보는 일제 강점기에 수많은 1등 기록을 남겼다. 조선 신문 최초로 새해 첫날 1면에 일왕 부부의 초상을 대문짝만하게 싣기 시작했고, 일본군을 ‘아군’ 또는 ‘황군’으로 표기한 것도 1등이었다. 일본군의 침략전쟁을 위해 조선 동포들에게 헌금을 강요한 ‘국방헌금’ 사고(社告)도 제일 먼저 실었다. ‘조선의 민중’을 ‘천황의 신민(臣民)’으로 표기한 것도 조선일보였다(오마이뉴스, 2001년 3월 5일).
조선일보는 자신이 맘만 먹으면 국회의원, 장차관 날리기는 일도 아니고, 노무현, 박근혜 정권을 무너뜨렸듯이 정권을 얼마든지 갈아엎을 수 있다고 믿는 것 같다. 국민들로부터 어떠한 선출이나 신임절차도 거치지 않고, 견제장치도 없는 절대 권력을 쥐고 있는 언론이 국민을 우습게 여기는 오만과 독선에 빠져있는 건 아닌지. 다른 건 달라도 좋다. 그러나 국가와 민족 문제에서 만큼은 생각이 일반 국민과 결코 다르지 않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는 언론은 같은 나라 언론이라 할 수 없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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