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말 8초, 여름 휴가 시즌이 절정을 맞고 있다. 얼마 전 필자는 서해의 영해 기점 도서이자 어업 전진기지, 감탄(於)이 절로 난다는 푸른 섬(靑島) 어청도를 찾았다. 30년 만이다.
어청도 하면 단연 등대, 섬이라고 어찌 세월의 흐름을 거역할 수 있으랴마는 푸른 바다와 어우러진 어청도 등대만의 아름다움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등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 마치 동화 속 세계에 온 듯한 이국적인 정취에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한 청량감까지 더해 준다.
등대는 해양 개척과 희망을 상징하기도 하고, 때론 서정성의 대명사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는 빛과 음향, 전파를 이용하여 뱃길을 잡아 주는 역할을 한다. 전북 관내의 해안과 섬에는 이러한 등대가 모두 580곳이 있다. 이 중 등대원이 상주하고 있는 유인등대는 어청도와 말도 단 두 곳 뿐이다.
1912년에 처음 불을 밝힌 어청도 등대는 마을 반대편 외딴 곳 절벽위에 세워져 있다. 멀리 48km 떨어진 해역까지 12초에 한 번씩 불빛을 비춘다. 지금이야 전기 공급과 정보통신기술(IT) 발달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관리하고 있지만, 80년대까지만 해도 등대원들의 가장 큰 일은 한 달에 한 번 정도 표지선이 싣고 온 보급품을 등대로 옮기는 일이었다. 발전기와 발동기를 돌릴 경유와 축전지 등을 지게에 지고 해발 100m 가까이 되는 험한 산길을 올라가서 등댓불을 밝힌 것이다.
조형미가 일품인 어청도 등대는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는데다 해양문화사적, 예술적 보존 가치가 높아 등대문화유산 제2호, 등록문화재 제378호로 지정되어 있다. 해양수산부가 ‘한국의 아름다운 등대 16경’ 중 하나로 선정할 만큼 자태 또한 빼어나다. 빨간 지붕과 하얀 등탑, 등대를 둘러싼 나지막한 돌담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 그야말로 한 폭의 수채화를 선사한다. 해 질 무렵 석양에 물든 바다의 운치는 더 말할 나위가 없고, 벼랑 위 정자에 앉아 파도 소리에 파묻혀 있다 보면 신선이 따로 없다.
어디 어청도 등대 뿐이랴. 고군산군도의 맨 끝자락에 위치한 섬 말도에도 유인등대가 있다. 어청도 등대보다 3년 앞선 1909년에 설치되어 1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불을 밝혀 오고 있다. 아쉽게도 내일부터 등대원이 없는 무인등대로 바뀌지만 대신에 이 곳을 더 멋진 해양관광 명소로 가꿀 예정이라 하니 기대가 된다.
말도는 장자도에서 뱃길로 40분이면 도착할 수 있다. 잘 정돈된 푸른 잔디 언덕 위에 예쁘장하게 서있는 말도 등대,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는 어청도 등대와는 또 다른 느낌이다. 고요하게 마을을 안고 있는 포구와 그 너머로 아스라이 펼쳐진 쪽빛바다는 마음의 평화를 얻기에 그만이다.
해안을 따라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신원생대 습곡지형 지층이 아릅답게 펼쳐져 있고, 한 여름 뙤약볕을 피해 울창한 숲길을 따라 가볍게 트레킹하기도 좋다. 비록 지리적 특성 탓에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작은 섬이지만 등대와 어우러진 때묻지 않은 자연은 말도만의 매력이다.
섬 여행에는 이처럼 한적함과 여유로움이 있다. 잔잔한 이야기를 담은 등대가 있다.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언제나 같은 모습으로 우리를 기다려주는 바다가 있다. 올 여름 휴가지가 아직도 고민이라면 꼭 어청도와 말도가 아니어도 좋다. 차량과 사람으로 붐비는 유명지보다는 등대가 있는 아름다운 섬, 넉넉한 바다의 품에서 일상에 지친 심신을 달래고 새로운 힘을 충전해 보는 것은 어떨까?
/박정인 군산지방해양수산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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