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에 빼앗긴 국권을 회복하고 자주독립을 꿈꿨던 함성과 영혼이 타올랐던 곳. 동토의 혹독한 추위와 거센 눈보라 속에서 고려인의 정신과 삶이 고스란히 서려 있는‘금단의 땅’ 러시아. 상해 임시정부수립기념일 100주년을 맞이하여 독립투사와 고려인들의 발자취를 따라 블라디보스토크, 우수리스크, 하바롭스크를 찾았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공산주의 국가라는 이유로 우리에게 더욱 더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 이데올로기를 벗어던지고 개혁 개방으로 과거 영광을 되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주하는 붉은 제국 러시아. 지금도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 강국의 하나이지만, 예전과 다르게 우리나라와도 긴밀한 경제협력체로 공동번영을 추진하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도 더욱더 가까운 사이가 됐다. 러시아는 우랄 지역에서 생산되는 석유와 서시베리아에서 생산하는 천연가스 등 풍부한 지하자원을 보유하고 있고 총인구 1억 4690만 명 규모와 세계 최대 영토 면적 1708만㎢ (한반도의 78배, 미국의 1.8배)를 자랑하며, 초원과 평야, 빙하를 가진 그야말로 자원의 부국이다.
이런 러시아가 이제 대한민국 독립의사들이 일제에 저항해 싸워왔던 과거의 아픈 역사와 문화의 흔적들을 발굴·개방하면서 눈에 띄게 변화하고 있다. 이데올로기와 공산주의로는 결코 성공할 수 없다는 교훈을 러시아에서 배울 수 있었다. 그러면서 러시아인들도 한국인을 우대하고 친밀감을 나타내면서, 일제 독립유공자들의 뜻을 기리고 관광명소로 개방함과 동시에 우리 민족사를 배우는 데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는 우리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성장과 발전, 국력의 상징이라 생각하니 더욱 뿌듯해진다.
한편으로 1937년 스탈린 치하에서 러시아 동아시아 지역에 거주하고 있던 고려인 약 20만 명이 카자흐공화국 및 우즈베크공화국 지역으로 강제 이주했고, 이 과정에서 2만 5000여 명이 숨졌다고 한다. 영하 40도를 넘나들며 어느 하나 생명이 살아갈 수 없는 죽음의 땅에서 한국인 특유의 강인한 생명력으로 지옥 같은 생활을 견뎌내야 했다. 토굴과 움막 속에서 얼어서 죽고, 병들어 죽고, 배고파 목숨을 잃었다는 것이다. 일제를 피해 조국에서 이역만리 러시아로 쫓겨나 다시 한번 삶의 터전을 강제로 바꿔야 했다.
일제 강점기에는 이곳 연해주에서 많은 애국지사들이 의병을 조직, 활동했다. 독립운동의 대부인 최재형 선생은 러시아 군대 군납사업으로 모은 재산을 독립운동과 시베리아 이주 한인 교육에 썼다. 또 상하이 임시정부 초대 재무총장으로 선임되기도 했다. 아울러 선생은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를 전폭 지원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이상설 선생은 “나는 죽어도 조국독립 없이는 고향에 돌아갈 자격이 없다”라며 국권침탈의 부당성을 외치며 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선생도 계속 항일투쟁을 벌이다 망국의 한을 품고 1917년 순국, 이곳 설빈강에 유골을 뿌려 강가에 유허지가 세워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민족의 영웅’ 안중근 의사도 1907년에 러시아 연해주로 망명하여 항일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그러다가 대한민국 독립과 평화를 위해 침략의 원흉인 일본‘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함으로써 한국인의 기개를 드높여 주었다. 수많은 애국지사들의 수난의 세월과 역경의 아픔을 간직한 그곳. 연해주는 초기 한인 독립운동의 역사적 무대였다. 독립운동의 구심점 역할을 했던 연해주지역. 그곳에서 애국애족의 정신이 지금도 불꽃처럼 활활 타오르고 있다.
/신이봉 (주)명성화학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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