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미국남장로교 선교부서 파송, 가난한 환자 돌봐
28년간 의료선교사 역할… 일기·기고문· 등 번역 출간
1897년, 미국남장로교 선교부에서 한국 전주로 파송한 푸른 눈의 의사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마티 잉골드. 그는 30세 여성의 몸으로 전주 서문 밖 은송리에 초가 진료소를 세우고 가난한 환자를 지극정성으로 돌봤다. 그의 뜨거웠던 열정이 담긴 일기와 기고문, 관련 자료를 번역한 책이 나왔다.
전주 예수병원(병원장 김철승)은 병원 개원 121주년을 맞아 <예수병원 설립자 마티 잉골드 일기> 를 펴내고 그의 생애를 재조명했다. 예수병원>
‘한강 이남 최초의 여의사’라고 불리는 마티 잉골드는 28년간 한국에 머무르며 의료선교사, 전도사, 근대적 교사, 문서선교 등 다양한 역할을 감당했다.
1925년 58세의 나이로 한국에서의 모든 사역을 마친 그는 미국으로 돌아갔고 1962년 10월 29일 95세의 일기로 눈을 감을 때까지 한국 선교활동에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으로 돌아가기 전 마티 잉골드는 송별사를 통해 “언제나 이기적이지 않게 저를 도우시고 제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줄 수 있게 하소서”라는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한국어 공부, 예수병원 초가 진료소, 추수감사절, 성탄절, 설날, 한국가정방문, 전도여행, 잔치 등 한국 전주에서의 일상이 슬라이드쇼를 보듯 펼쳐진다. 마티 잉골드가 직접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느낌 덕분일까. 모든 것이 낯선 한국 땅, 그중에서도 전주에 정착해 의료와 선교활동을 펼쳤던 그의 시간에 점점 빠져든다.
1898년 진료를 시작한 마티 잉골드는 자신이 진료한 환자들의 이야기도 상세하게 기록했다. 덕분에 이 책에도 1899년부터 1904년의 진료기록이 담겼다.
가까운 군산에도 종종 들러 다른 의료선교사와 만나 약을 얻거나 처방법을 배워오기도 했다. 주일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일과 전주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들과 성경학교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도 상세하게 적었다. 그의 한글 필체와 당시 선교사들의 모습이 담긴 사진이 함께 실려 당시 전주의 풍경을 짐작하게 한다.
이 책에는 마티 잉골드를 소개한 신문기사와 잉골드의 초급 교리 문답을 비롯해 미국 볼티모어 의대 자료, 미국 록힐제일장로 교회 자료 등 쉽게 찾기 어려운 자료도 수록했다.
김철승 예수병원장은 “가난한 천년 고도 전주 땅에서 주가 명하신 사명 하나로 동행하며 전 생애를 바쳐 헌신한 모든 순간이 진가의 사랑이었다”면서 “예수병원의 첫사랑 마티 잉골드의 뜨거운 삶이 고스란히 담긴 아름다운 기록을 번역 출판하게 돼 기쁘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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