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사람들은 공산당 투표를 한다.”
선거가 끝나고 나면 호남 민들의 특정 후보와 정당에 대한 몰아주기 투표행태를 두고 하는 말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의 대통령선거 결과들을 보자. 1987년 13대 대선을 시작으로 14대, 15대 대선에서 호남 민들은 김대중 후보에게 90% 이상의 몰표를 주었다. 특히 1997년 15대 대선에서는 광주 97.3%, 전남 94.6%, 전북 92.3%라는 사실상 100%에 가까운 몰표를 주었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역시 몰표를 받았다. 광주 95.2%, 전남 93.4%,, 전북 91.6%. 이거에 비하면 지난 19대 대선 때 호남에서 몰표를 받았다는 소리를 듣는 문재인 후보(광주 61.1%, 전남 59.9%, 전북 64.8%)는 표를 받은 것도 아니다.
국회의원 총선도 마찬가지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전라북도 14개 선거구 전부를 평민당이 싹쓸이 했다. 14대 총선에서는 14개 선거구에서 12개, 15대 총선은 14개 선거구에서 13개, 16대 총선은 10개 선거구 중 9개, 17대 총선은 11개 선거구 모두를 민주당 뿌리의 한 정당이 휩쓸었다. 18대 총선에서는 11개 선거구중 9개, 19대 총선은 11개 선거구중 10개를 민주당 뿌리의 정당이 압승을 거뒀다. 2016년 20대 총선은 국민의당이 10개 선거구 중 7개, 민주당이 2개, 새누리당이 1개 의석을 차지했다. 민주당이 아닌 안철수의 국민의당이 압승을 거둔 것은 과거 흐름과는 달랐지만 특정 정당이 압승을 거둔 전통은 달라지지 않았다.
전북은 선거구가 10개로 나누어져도 표심이 같이 움직이는 사실상 단일 선거구이다. 조국 파동에서도 문재인 대통령과 민주당에 대한 충성도가 강철대오처럼 흐트러지지 않는 전북의 민심을 본다면 내년 총선에서 민주당의 독주는 거의 틀림없다. 전북도민들의 특정 정당 몰아주기 투표행태 전통과 작금의 민심을 감안한다면 아무리 못해도 민주당이 한두 석 빼놓고는 압승할 것이다.
전북도민들을 포함한 호남 민들은 왜 그토록 특정 후보와 정당에게 몰표를 던지는 걸까? 한마디로 한풀이 때문이다. 지역차별에 대한 서러움과 분노를 표출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정치행위가 바로 투표이다. 설령 내가 미는 대선후보가 당선되지 않아도, 내가 지지하는 정당이 제 1당이 되지 않아도 투표장에 나가서 한 표를 던져야 직성이 풀린다. 누구에게 몰표를 주자고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 다 알고 있다. 생각이 똑같기 때문이다.
호남사람들을 같은 생각, 같은 투표행동으로 이끄는 메커니즘은 무엇일까? 퍼트남(Putnam)의 사회자본(social capital) 개념으로 설명할 수 있다. 사회자본이란 한마디로 이웃 사람들에 대한 신뢰와 친밀성을 말한다. 수도, 전기, 도로, 통신망 등 한 사회를 연결시키는 사회간접자본(social overhead capital)이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하드웨어라면, 사람들을 끈끈한 신뢰로 연결해주는 사회 자본은 사회를 지탱해주는 중요한 소프트웨어다. 사회자본이 빈약하면 사회의 안정과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다. 유유상종. 비슷한 사람끼리 어울리고, 어울리다 보면 비슷해진다. 사람들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에서 마음이 맞는 이웃과 연대를 형성하고, 그들과 어울리면서 비슷한 가치와 신념을 형성하게 된다. 이웃주민들에 대한 신뢰와 연대인 사회자본이 주변 사람들과 비슷한 태도나 신념을 갖도록 하고, 공동체와 일치하는 방향으로 행동하도록 이끄는 것이다.
특정 후보와 정당에 몰아주기 투표는 지역주의에서 비롯된다. 지역주의 투표는 호남만의 문제는 아니다. 3김 시대가 끝나고 국민소득이 3만 달러를 넘어도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아무리 정당보다는 인물 중심으로 뽑자고 호소해도 소용없다. 지역주의 투표행태가 결코 바람직한 현상은 아니다. 그러나 이 또한 엄연한 민심이고, 민심을 억지로 바꿀 수도 없지 않은가. 참으로 어려운 우리 모두의 숙제이다.
/권혁남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