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선임기자
한 시절 화려했으나, 도시 발전에 따라 상권의 축이 옮겨가면서 활기를 잃은 공간이 적지 않다. 도시의 패러다임이 바뀐 지 오래, 낡고 방치됐던 공간을 살려 도시의 새로운 동력으로 삼는 일은 더 이상 낯설지 않지만 창조적인 상상력으로 새 옷을 입힌 공간을 가진 도시는 여전히 그렇지 못한 도시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도시재생의 궁극적인 목적은 지속가능한 도시발전의 힘을 얻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도시들의 ‘지속가능한 힘’은 아직 멀리 있어 보인다. 도시와 공간의 정체성을 담아내는 진지한 노력과 시간의 투자가 빈약한 탓일 터인데 여느 도시들과 다를 것 없는 내용과 형식, 자생의 힘을 일찌감치 포기해버린 차별성 없는 콘텐츠 구현이 그것을 증명한다.
주목할 만한 사례가 있다. 독일 베를린에 있는 문화생태마을 우파파블릭(ufa Fabrik)이다. 우파파블릭은 공동체의 힘과 가치를 제대로 보여주는 도심 속 마을이다. 이곳은 1920년대 문을 연 필름현상소가 있던 공간인데 1961년 베를린 장벽이 만들어지면서 기능을 잃고 문을 닫았다. 당시 유럽에서는 젊은 세대들의 이주가 활발하게 이어졌다. 빈 건물로 방치되어 있던 이곳 필름현상소에도 베를린으로 이주해오는 젊은이들이 몰려들었다. 낡고 오래된 건물은 불편했지만 입주자들은 떠나지 않고 건물을 새롭게 고쳐 생활공간을 만들고 마을을 꾸렸다. 이들은 ‘길드’ 형식의 공동체를 주목했다.
이곳 공동체 마을을 알린 것은 1978년, 주민들이 연 페스티벌이다. 3개월 동안 이어진 이 축제는 공동체 마을의 지속가능한 기반을 만들기 위한 실험이었는데, 도심의 쓰레기와 쓰지 않는 물건들을 모아 생활용품을 만들어 판매하거나 재활용하는 방법을 공유했다. 환경 친화를 주제로 한 치열한 토론은 세계 최초로 태양열목욕탕과 물을 내리지 않아도 되는 자연발효화장실을 개발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우파파블릭은 이듬해 6월, 공동체 마을로서의 공식적인 출발을 알렸다. 마을 안에는 빵공장이 들어섰으며 마을을 찾아오는 사람들을 위한 카페와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이 공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물론 주민들이었다.
40년이 지난 지금, 우파파블릭은 해마다 수십만 명의 방문객들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문을 열고 닫는 공간이 아니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마을로 진화했으니 그야말로 도시의 지속가능한 동력이 된 셈이다.
재생의 형식 거개가 낡은 건축물 활용에 치우쳐 있는 우리에게는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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