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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속의 수묵화, 예향에서 외면 받아서야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너른 들과 평온한 바다, 순박하고 포근한 기운, 지금보다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여백이 많은 사람들, 세상이 위태로울 땐 ‘숨어 있는 변혁의 기상’이 결기를 세워 평화를 이뤄낸 땅, 이러한 풍토와 역사 속에서 자란 예술은 어떤 모습일까?

전북도립미술관에서 동아시아의 공통 양식이면서 한국적 정체성을 드러내는 의미 있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수묵정신”전이다. 이 전시를 관람한 재미의 유명 화가는 “부조화와 모순이 만들어 내는 상충의 조화가 아름답다”고 평가했다. 수묵화는 이처럼 서로 대립되는 것이 공존함으로써 발생되는 에너지이자, 불과 물이 만나면서 형상에 의미를 더하는 뜻 그림이다. 불과 물이라는 상극이 만나 상생하는 조화의 원리가 근본이다. 그것은 우주 생성의 원리이자 생명의 본질이다.

화가가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는 이 오래된 질문 앞에 서 있다. 화가가 도달하려고 하는 것은 인격완성이자, 진선미 일치다. 결국 자기 도야를 거쳐 성인과 같은 식견을 지녀 그림을 통해 세상에 은택을 베푸는 일을 하는 것이다. 이의 실현을 위해 화가는 독서와 실천, 주유와 반성 그리고 좌망을 한다. 따라서 깨어 있는 지식인들은 흑과 백으로 의미를 표현하는 수묵화를 선택했다. 가장 단순한 색으로 천변만화하는 자연의 이치를 담는다. 장식적인 표현과 색은 허례와 허식일 뿐이다. 장식성은 진선미와 거리가 멀다. 고요적조한 세계와도 괴리가 있다. 담박소쇄의 세계는 더더욱 아니다. 가장 단순하면서 간단한 근본만으로 뜻을 사물에 의탁하려 했다. 그러다보니 표현은 절제되고 힘은 빠져 있으며 습관적인 붓질조차 허락하지 않는 탈속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설명을 줄이면 의미가 증축된다. 수묵화에는 고도의 축약된 정신이 존재한다. 형상을 그려 형상 너머의 뜻을 함축한다. 수묵은 정신을 표현하는 최적의 방편이다.

예술은 자기 성찰의 결과물이다. 자연스러움과 꾸밈이 없는 천연성을 최고로 친다. 내가 나의 사고에 갇혀 있는 것이 아니라 무의의 상태에서 공존을 생각한다. 내가 나를 순화 시키고 우리가 함께 공감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다. 선을 쓰되 최소한의 붓질로 골격만 드러낸다. 본질을 파고 들어가는 경계, 힘을 뺀 상태임에도 강한 기질이 느껴지는 상태, 그 고요함과 순수함 속에 수묵문인화의 세계가 있다.

전북은 한국수묵화의 본고장이다. 역사 속에서 전북의 서화인들은 인격 함양을 목표로 자신을 충일하는데 집중했고 후진 양성에 힘썼다. 포용력 있게 이웃을 껴안았고 함께 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치열하게 격동기를 살았다. 그 속에서 수묵화는 하나의 수단이고 형식이었다. 사람들은 수묵화를 통해 시대를 읽어냈고 담담하고 힘 있게 삶을 이야기했다.

오늘날 수묵화는 조형성과 정신표현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더불어 전북문화에 대한 관심이 두터워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전북의 지자체장들은 지역 문화와 예술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듯하다. 지역문화가 곧 세계로 통하는 출구이다. 지역경제에 대한 고민을 문화와 접목시켜야 한다. 세계 뮤지컬의 중심 뉴욕처럼 전북은 세계 수묵화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수묵화의 저변을 넓히고 다양한 수묵 전시를 상시화 해야 한다. 수묵을 공부하기 위해 세계인들이 전북을 찾게 하고, ‘아시아 수묵화 전당’설립도 고민해야 한다. 한지, 붓, 먹 등 수묵과 관련된 산업도 발전시켜야 한다. 수묵화는 한국인의 독특성과 품격 있는 정신을 그리는 중심이다. 이제 막 세계에서 인정과 주목을 받는 수묵화가 본 고장인 전북의 새로운 활력이 되기를 바란다.

/김호석 수묵화가·전 전통문화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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