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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서점 탐방에서 보고 느낀 것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지난주 전주의 서점 운영자 5명이 런던 서점 탐방을 다녀왔다. 짧은 4일 일정이었지만 16곳의 서점을 함께 돌아봤다. 각자 간 데까지 합치자 25곳이 넘었다. 발에 피물집이 잡힐 정도로 강행군이었지만, 서점 문을 여는 순간 우리 눈빛은 번뜩였다.

많은 서점을 돌아보면서 내가 가장 주의 깊게 관찰한 것은 ‘이곳이 다른 서점과 다르게 갖춘 섬세함은 무엇인가’였다. 첫날 눈에 들어온 곳은 ‘헨리포드 북스(Henry Pordes Books)’라는 오래된 역사를 자랑하는 서점이었다. 이곳은 헤리포터 초판본이나 헤밍웨이 시집 같은 고서적을 파는 공간과 데이비드 호크니나 윌리엄 터너 같은 화가들의 화집을 판매하는 공간으로 나누어졌다. 15평 남짓한 평수의 아담한 서점이지만 같은 시간대 일하는 점원이 4명이나 된다는 점이 놀라웠다.(그후 둘러본 많은 런던 서점들이 그랬다.)

점원들은 작은 손수건으로 책등을 닦거나 손님에게 정성껏 책 설명을 해주며 묵묵히 자기 일을 했다. 계산대에는 아기 주먹보다 작은 책들이 꽂혀 있었다. 사랑에 관한 시를 모은 오래된 시집이라 했다. 점원은 출판연도와 작가에 대해 꼼꼼히 설명하며 책을 펼쳐 한 편 한 편 시를 읽어 주기 시작했다. 마치 사랑하는 사람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을 이야기하듯 그의 눈빛은 깊었고 목소리는 따뜻했다.

다음 날 사뭇 남다른 기대를 하며 찾아간 서점은 ‘페르세포네 북스(Persephone Books)’라는 곳이었다. 이곳은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작가를 발굴해 책을 출간하거나 잊혀진 여성 작가들의 절판된 책을 재출간하는 출판사 겸 서점으로 모든 책의 표지가 회색이어서 ‘회색 책 서점’이란 별칭으로 유명하다.

책을 펼치면 제목에 앞서 알록달록한 패턴의 속표지가 눈에 들어온다. 책의 표지는 전부 회색인데 펼치면 모두 다른 패턴의 속표지 갖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다. 책 옆에 놓인 책갈피도 속표지와 같은 패턴으로 책 설명이 빽빽이 적혀 있다. 모두 다른 속표지와 전부 다른 책갈피를 갖고 있는 한 권의 세상. 이곳에선 한 권의 책이 단 하나의 방이었고, 한 사람의 작가가 유일한 세계로 우뚝 서 있었다.

마지막으로 인상 깊었던 곳은 템즈강 옆 작은 책 시장에서 발견한 ‘비비북스(BB BOOKS)’라는 거리 서점이다. 전주 서점 운영자들은 런던에 오기 전 인터뷰에 응해주는 서점 주인에게 선물할 책 한 권을 가져오기로 했다. 나는 허수경 시인의 유고작 ‘가기 전에 쓰는 글들(난다)’를 배낭에 챙겼다. 누구에게 주면 좋을까. 마지막 날 홀로 거리를 걷던 중 나는 이 책을 주고 싶은 단 한 사람을 발견했다.

관처럼 생긴 긴 나무 궤짝에서 수도 없는 책을 꺼내던 사람, 칼바람을 맞으며 긴긴 플라스틱 접이식 책상에 정성껏 책을 진열하던 사람, 예술·인문학·역사·스포츠까지 다양한 책 목록을 갖추고 손님을 기다리는 사람, 낯선 이가 다가와 불쑥 건네는 선물에 너털웃음을 지으며 한국 친구에 대해 얘기해 주던 사람, 템즈강이 흐르고 런던아이가 보이는 근사한 풍경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던 사람. 그래서 다른 서점과 다르게 갖춘 섬세함을 파괴하고 거리의 책 악사가 된 사람. 나는 이처럼 다양한 사람과 정밀한 풍경이 있는 런던 서점 탐방에서 고인 생각의 주름이 한꺼번에 펴지는 것을 느꼈다.

/임주아 물결서사 대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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