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글자 한 글자 수필을 쓰는 것은 한 발 한 발 가슴으로 걷는 걸음과 같다. 반세기가 넘은 세월 동안 밟고 또 밟히면서 다져진 수필가 김순영(1937∼2019). 그의 길에도 수많은 갈래가 있었고, 그 길마다 수많은 사연이 쌓여 있었다. 글로 이어진 그의 길들은 늘 머뭇거리지 않고 다시 이어지며 또다른 이야기를 남겼다.
김순영은 ‘수필은 사람이 걸어온 자취이며, 삶에서 찾아낸 정(精)의 뿌리’이기에 ‘재주로 쓰는 글이 아니라, 애정으로 쓰는 글’이라고 말했다. 몸은 마음을 담는 그릇이고 입은 마음에서 나오는 소리를 내는 것. ‘휴우’는 한숨이고, ‘아얏’은 비명이며, ‘하하’는 기쁨이고, ‘흐윽’은 울음이다. 그는 ‘일상을 살아내면서 수없이 내지르는 이런 소리를 정리하고 정돈해 언어로 정선하는 작업’이 자신과 수필과의 해후라고 정의했다. 세상과의 화해가 필요했던 때마다 그를 달래주었던 것은 문학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1961년 전북일보(동화·‘샛별 질 무렵’)와 삼남일보(수필·‘외투’) 신춘문예로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등단 이후 문집·신문·잡지에 차곡차곡 글을 발표했다. 그 글이 한 무리를 이루면 꼼꼼하게 모아 수필집을 냈다. 그가 묶은 수필집은 모두 여섯 권, 432편. 혼나고 깨져도 스스로 부서지지 않았으니, 글은 스스로 성장했다.
그의 마지막 수필집 <東이 西에서 먼 것같이> (2009·수필과비평사)에는 ‘옴팡집’, ‘꽃의 어여쁨이 보이는 이의 행복’, ‘어매! 어째야 쓰까’, ‘인연’, ‘프라하의 천문시계’, ‘호국의 성지 강화도’, ‘용머리고개의 기적’ 등 50편이 실렸다. 표제작인 ‘東이 西에서 먼 것 같이’에는 먼 길 떠난 남편과의 이별과 신앙을 거울 삼아 돌아본 삶의 가지가 빼곡하다. 상처를 쓰다듬고 치유를 살피는 것이 문학이다. 그는 고통 속에서 더함이나 덜함 없이 ‘나’를 바라보는 신(神)을 만난 것이 큰 축복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책의 서문에 ‘부끄럽지 않은 작가, 삶과 글이 진실한 작가, 독자에게 폐가 되지 않는 작가로 남고 싶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오래 묵고 삭힌 그의 문장과 행간은 한층 더 깊은 믿음을 주었고, 여유로웠다. 東이>
김순영의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작정하고 읽을 필요가 없다. 느릿느릿 해찰하면서 헤아리면 그만이다. 꼭 하고 싶은 이야기, 말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은 이야기, 그때 거기의 이야기, 지금 여기의 이야기, 삶의 안팎에서 빚어지는 간절한 이야기와 빛깔을 갈무리하는 문학의 열정이 늘 그의 곁에 있기 때문이다. 상처를 다루며 치유를 살피는 것이 문학의 힘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가 걸어온 길에 서면 마음과 마음이 만난다. 햇살이 눈부시다.
* 2000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소설)로 등단한 최기우 작가는 연극·창극·뮤지컬·창작판소리 등 무대극에 집중하고 있다. 희곡집 <상봉> 과 창극집 <춘향꽃이 피었습니다> , 인문서 <꽃심 전주> 와 <전주, 느리게 걷기> , <전북의 재발견> 등을 냈다. 전북의> 전주,> 꽃심> 춘향꽃이> 상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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