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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더 다양한 질문이 필요하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새 해 첫날 그녀가 물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

그녀가 무심하게 던졌던 이 짧은 질문은 나를 둘러싼 사회의 많은 것들과, 과거와 현재의 ‘나’에 대한 깊은 사유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올해로 14년째 연극활동을 하고 있다.

배우로 10년 그 후엔 연출로,

처음 연극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은 “연예인이 얼마나 힘든 직업인 줄 아느냐”는 (질문을 가장한) 질타였다. 나는 연예인이 되고 싶은게 아니었는데...

5년쯤 지나고 나니 “아직도 연극 하니?” 라는 냉소어린 비아냥을 받기도 했고 10년쯤 되니“요즘은 연극 같은거 해도 벌이가 되느냐?”며 끈기를 인정(?)받기도 했다.

예술가를 직업군에 포함시키지 않으려는 우리사회의 인식은 어린 날의 나를 안정된 직장인이라는 기준에 한참 못미치는 객기 넘치는 철부지로 규정했고 그로인해 꽤 긴 시간 나는 나 자신을 부끄러워했다. 왜 하필 연기가 하고 싶을까, 내가 가진 재능이 마치 독이라도 된 듯이 무명의 연극배우가 감내할 것은 배고픔이라 믿으며 온갖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도 참고 버티는 것만이 해결책라고 믿고 버티고 또 버텼다. 돌아보면 짠내나고 암울했던 기억들..

초라해질 대로 초라해진 그때의 나에게 너의 창작과정은 근로로 환산할 수 있으니 너의 배고픔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다, 예술가의 사회적 역할은 높이 평가 받아야 마땅하며 너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받아야 한다고 일러주는 선배가 있었다면 어땠을까? 또한 그게 어떤 일이든 우리 모두는 그저 가슴 뛰는 삶을 살아도 괜찮다며 내 손을 잡고 격려해주는 어른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어느덧 나는 그런 진심 어린 위로를 해줄 어른으로, 예술가의 권리에 대한 제도적 변화를 주장할만한 선배로 성장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크고 작은 자리에서 청년예술가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발언하고 30대 중반의 여성예술인이자 연출가로서 동시대에 예술의 기능적 요소를 이해하는 창작물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제야 이 직업을 선택한 스스로를 인정하고 긍정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요즘 나에게 다시 시련 같은 질문이 많아진다.

“그래서 결혼은 언제 할 계획이냐?”

가슴이 턱 하고 막힌다. 예술가로 고군분투 하며 열심히 살아온 지난날의 흔적이 완벽하게 지워지는 느낌이다, 결혼을 하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해내는 여자 선배들을 일컬어 “독하다”고 치부하거나 “히스테릭하다”고 폄하하는 분위기를 체험했기에 결혼과 출산은 여성예술가로 하여금 완성된 삶의 형태라고 믿게 하기도 했다. 더 큰 사회적 인식의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이다. 그렇게 결혼을 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은 나는 또 한번 이 사회에서 철부지로 평가되는 위기에 놓였다.

그런데 그녀는 결혼이나 출산, 가족관계, 연봉 등 사회적 기준이 아닌 내가 살고자 하는 삶에 대해 질문해주었다.

“올해는 어떤 작품을 하고 싶어?”

그것은 나를 다시 살게 하는 질문이다. 나를 더 잘 살게 해줄 질문이다.

무척 사적이지만 전혀 불편하지 않은 질문. 나를 오롯이 창작자의 위치에 놓아두었기에 가능한 질문.

나는 대답한다.

“어딘가 불편해서 자꾸만 외면하고 싶었던 이야기, 들여다보면 가슴이 뜨거워지는 이야기, 하다보면 잘 했다 싶은 이야기.”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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