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문학의 힘으로 밝혀준 이들이 있다. 사회의 일원으로, 가족의 한 사람으로, 주변의 이웃으로 함께 해왔던 이들의 오랜 노력이 빛을 본 것이다. 기쁘고 감사하다는 인사에도, 겸손한 자세로 더욱 정진하겠다는 다짐에도 다 담지 못한 속내가 있을 터. 이에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당선자들이 전하는 문학과 삶 이야기에 귀기울여봤다.
△소설 오은숙 씨 “나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 머릿속에 스쳐”
오은숙(46) 씨에게 소설은 ‘위로’였다. 학창시절부터 문학작품을 읽을 때면 구원 받는 느낌도 들었다. 어른이 되고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한참이 지나서야 자신이 받은 위로를 다른 이들에게 돌려주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자기를 구원하면 남 또한 자연히 구원된다”고 했던 스승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
젊은 날에는 시나리오와 단막극을 쓰며 문학적인 표현에 맛을 들였다. 재미있는 이야기와 문장을 읽는 맛 외에도 행간에게 느껴지는 이미지가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삶을 관통하거나 비켜가는 것일지라도 그것을 향유할 수 있는 기쁨은 분명했다.
“일터에서 여느 때처럼 일을 하던 중 당선소식을 들었어요. 전화를 끊고 지인에게 알리는 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이십대부터 ‘나’를 찾아 헤맸던 시간들이 머릿속에 스쳐가더라고요.”
주변의 반응은 다양했다. 언행을 조심하라고 당부하시던 아버지, 집안에 경사가 났다며 크게 기뻐하시던 어머니. 스스로도 무덤덤하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이 교차했다.
오은숙 씨는 그간 사회에서 다양한 일에 몸담았다. 조무사 자격증이 있었지만 공장을 전전했고, 짧게나마 무역회사에 근무하기도 했다. 영어 학습지 교사로 일한 적도 있다. 그러던 중 글 쓰는 일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직장을 그만두기도 했다.
신춘문예에 처음 도전한 것은 32살 때였다. 신경증에 걸린 부인과 고양이에 관한 이야기를 썼다. 작가로서 서툰 것 투성이였기에 가슴이 뛰고 조바심이 났다.
“어느 해엔가는 매년 원고를 부치는 것이 부끄럽게 생각돼 일부러 다른 동네의 우체국으로 옮겨 간 적도 있어요. 우체국 앞에서 고칠 문장이 떠올라 집으로 돌아온 적도 있죠. 눈비가 오던 날엔 글자가 번질까 원고를 품에 꼭 안고 간 일도 생각나네요.”
이번 당선작 ‘납탄의 무게’는 부모와 자식의 멀고도 가까운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서는 “가족사를 담은 장편과 노부부의 동화 같은 이야기를 쓸 생각”이라고도 했다.
△수필 김애자 씨 “삭히고 숙성시킨 과정이 참 길었어요”
대학 전임강사로 퇴직 후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김애자(68) 씨는 바쁜 생활 속에 접어두었던 글쓰기로 인생의 방향키를 잡았다. 전공은 피아노다. 서예와 회화 등 미술 분야에도 발을 들였다. 동양의학과 침술도 배웠다. 하지만 문학에 대한 열정이 가장 크다. 현재 머물고 있는 지점이기도 하다.
최근 2년 동안에는 매일 1~2권의 책을 읽고 일주일에 한 편씩 수필을 써냈다. 마음에 담길만한 글을 기록으로 남겨두자는 다짐이었다. 마지막으로 도전해보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혹 결과가 좋지 않더라도 후회와 미련을 두지 않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다.
그렇게 3년째 접어드는 해 ‘신춘문예 당선’이라는 큰 열매를 수확했다는 김애자 씨. 어느덧 60대 후반의 나이다, 주변에서는 “가장 어려운 것을 이뤄냈다”며 분에 넘치는 환호와 칭찬을 보내왔지만 스스로는 당선이 늘 남의 일이라 여겼기에 크게 실감나지 않았다. 10여 년간 수필을 써왔음에도 자신의 글이 초라하게만 보였다. 하지만 58세에 박사학위를 받으면서 논문 쓸 때처럼 일 년만 후회 없는 열정을 쏟아보기로 한 결정이 잘 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수필 ‘망월굿’은 여러 해 전 정월대보름날, 여행지에서 우연히 보았던 달집 태우기에서 영감을 빌려왔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사진처럼 생생한 이미지로 남았다.
아이를 낳고 엄마가 되고 보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이 절실해졌다. 농사일 바쁜 집에 시집 와서 쉴 틈 없이 농사와 가사일에 몰두했던 어머니다. 요새는 달을 바라볼때 마다 그때 그 시절 어머니의 인생을 떠올리느라 밤이 깊어간다.
“글의 소재를 품고 화소를 모으며 뼈대를 세우기까지 수년이 걸렸어요. 한 숨에 읽을 수 있는 글이지만 품고 키워 내놓기까지 삭히고 숙성시킨 과정이 참 길었거든요.”
김애자 씨는 이제 더 이상 웅크리지 않겠다는 씩씩한 다짐을 밝혔다. 늘 자신없어하고 스스로를 낮추던 습관을 버리고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자신만의 글을 써나가겠다는 것. 수필에서 받은 인정을 디딤돌 삼아 시, 소설 등 다른 장르로도 영역을 넓히며 기본을 갖추는 문인이 되겠다는 포부다.
△동화 차승호 씨 “쓸모없어 보이지만 쓸모가 있는 것들 있죠”
신춘문예 당선자 발표를 앞두고 차승호(56) 씨는 휴대전화만 보며 지역번호 ‘063’으로 시작하는 전화가 오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해였던가. 국민학교 다닐 적 글을 잘 쓴다며 칭찬해주셨던 문예반 선생님이 신춘문예에 당선돼 텔레비전에 나왔을 때 가졌던 꿈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처음엔 시인이 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20년 넘게 시를 썼다. 그러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한달전 쯤부터는 삶의 유한성 앞에 절망하던 나날을 보낸 끝에 동화와 동시에 눈을 뜨게 됐다.
“문학은 삶을 돌아보게 하고, 고난을 견디게 하고, 계속해서 살아가게 합니다. 스쳐보면 쓸모없어 보이지만 오히려 쓸모가 있는 것들이 있죠. 저에게는 동화와 동시가 그렇습니다.”
본격적으로 작품을 쓴 건 20대부터다. 한동안 신춘문예 열병도 앓았지만 한두 번 최종심에 오르는 데 그쳤다. 한계를 느낀 차승호 씨는 신춘문예에 대한 열망을 접어두고 시를 쓰며 나이를 먹어갔다. 이번 도전은 네 번째였다. 동화와 동시를 써냈는데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가 반가운 소식을 불러다줬다.
동화 ‘우주인 할아버지’는 3년간 요양원에서 지냈던 아버지의 모습이 담겨있다. 아버지에게 닥쳐온 ‘죽음’이 ‘스타게이트’ 처럼 우주로 나가는 통과의례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썼다고.
직장인으로서 도시생활에 익숙하다는 차승호 씨는 “글쓰기가 축복처럼 느껴졌다”며 “글 쓰는 시간은 삶을 견인하는 한편 지난한 직장생활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됐다”고 털어놨다. 동료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전북일보 신춘문예 출신인 송현섭 시인의 동시를 인상 깊게 읽었다고 한다.
차승호 씨는 이번 결과를 출발점으로 삼고 좋은 작품을 쓰겠다는 각오다. 신춘문예 새내기는 오늘도 열심히 연필을 깎고 있다.
한편 2020 전북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작은 지난 7일 당선 취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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