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흰 쥐의 해 (庚子年)

▲ 양복규 명예교육학박사
▲ 양복규 명예 교육학 박사

경자년을 흰 쥐해라고 한다. 십간(十干) 중에 갑을(甲乙)은 푸른 빛, 병정(丙丁)은 붉은 빛, 무기(戊己)는 누른 빛, 경신(庚辛)은 흰 빛, 임계(壬癸)는 검은 빛이기 때문이며, 십이지(十二支)에서 자(子)는 쥐를 지칭하기에 위와 같이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본초강목(本草綱目)’에서 쥐는 포유류 중에서 가장 작은 동물로 오장육부 등이 사람과 유사한 점이 많기에 현대 의학에서 쥐를 통해 사람의 질병을 감염시키고 치료하는 실험을 끊임없이 하고 있다.

쥐의 생명 기간은 2년쯤 되고, 6개월 동안에 200 마리의 새끼를 낳는다고 하여 다산의 상징으로 12지 동물 중에서 아들 자(子)를 부여하였을 뿐 아니라 가장 윗자리에 놓은 것을 보면 인류의 번영은 인구의 증가에 있다는 진리는 예나 오늘이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예로부터 우리 문화에 깊숙이 자리해온 쥐는 재물, 다산, 풍요를 기원하는 상징이었고, 미래를 예시하는 영물로도 취급되고 있기에 “쥐가 없는 배는 타지 말라”던가 “배에서 쥐가 내리면 멀지 않아서 배가 침몰될 조짐”이라는 속설도 있는 것이다.

쥐는 질병을 치료하는 실험용 외에는 백해무익한 존재다. 특히 앞니(門齒)가 매일 자라고 있기에 무엇인가를 앞니로 씹고, 갉아서 자라는 이를 갈아내야 하는 구조를 가졌기에 가마니, 문틀 등 닥치는 대로 갉아대고 있는 것이다. 그 뿐이 아니다. 흑사병 등 질병을 전염하는 매체로도 빼놓을 수 없는 동물이다.

쥐에 대한 설화도 많다. 사마천의 ‘이사(李斯)열전’에 보면 중국 초(楚)나라의 관리였던 이사가 아침마다 화장실을 가는데 매일 같은 쥐가 와서 이사의 방변(放便)만 먹고 사는 것을 보고 ‘아! 나도 저 쥐와 같이 이곳에서 우물 안 개구리 같은 생활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곧바로 진시황제를 찾아가서 시황제를 모시고 승승장구로 고관대작의 반열에 올라서 자기의 소원을 이루었는데 시황제가 죽고 그 아들 호해(胡亥)에게 권좌가 넘어가는 도중에 과욕에 현혹되어 추락되었다.

조선조 명종 때에 복술가(卜術家)로 유명한 홍계관(洪繼灌)이 있었다. 시대가 어지러울수록 복술가를 찾는 이가 많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기에 홍계관 시절에도 우리나라가 내우외환(內憂外患)으로 평탄치 못한 때였다. 영화로도 만들어질 정도의 전무후무한 복술가 홍계관이 쥐 때문에 죽임을 당했다는 ‘동국여지승람’에 보면 홍계관은 국복(國卜)으로서 생로병사는 물론 독사에 물릴 것이라는 것과 어느 때에 종기가 날 것까지 예언하기에 장안에 홍계관 동네와 도로까지 생겨날 정도였다.

이와 같은 유명한 복술가의 소문이 임금님에게까지 알려지자 홍계관을 불러놓고 시험을 해볼 요량으로 준비를 하고 있는데 마침 쥐 한 마리가 그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임금님께서 “방금 지나간 쥐를 보았느냐?” “예” “몇 마리더냐?” “세마리옵니다.”라고 우기자 임금님은 화를 내면서 “코앞의 쥐 숫자도 모르는 놈이 어찌 선량한 백성들의 미래를 점친단 말이냐”면서 아차산 밑에 형장으로 보내어 처형토록 하였다.

이와 같이 처리하고도 임금님은 꺼림칙했던지 그 쥐를 잡아 배를 갈라본즉 새끼 두 마리가 들어있기에 자기의 오판을 인정하고 형장으로 사람을 보내어 홍계관을 죽이지 말도록 하였으나 이미 처형은 끝나버렸다. 금년에는 쥐의 해에 걸맞은 다산이 많이 이루어지기를 소망하는 것은 온 국민의 염원이라고 하면 과언일까?

/양복규 명예 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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