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웅의 시 ‘주시 망상’에는 이런 대목이 나온다.
나를 들여다보지 마시오/ 비를 머금은 구름이 흐르고/ 가치 있는 일거리나 혹은 애정의 행각 같은 것/ 아무것도 없었소./ 속속들이 내 마음 조각들을 읽어 알아서 무엇하겠소./ 내 몰골을 들여다보지 마시오./
이광웅은 익산 출신으로 1967년 유치환과 1974년 신석정의 추천으로 시인이 되었다. 1976년 군산 제일고 재직 중 1982년 ‘오송회 사건’으로 구속되어 7년을 선고 받고 복역 중 1987년 사면 조치로 풀려났으나 고문 후유증과 병환으로 1992년 12월 22일 사망했다.
오송회 사건은 월북 시인의 시집 ‘병든 서울’을 읽었다는 혐의로 군산 제일중학교?고등학교 교사들을 연행하여 대공 분실과 여인숙 등에 10-23일씩 불법 감금하고 고문과 가혹 행위로 허위 자백을 받아 실형을 받았으나 2007년 ‘진실과 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 위원회’는 이 사건을 군사정권기 국가 보안법을 남용해 조작한 사건으로 결정, 2008년 11월 25일 광주 고등 법원 재심에서 무죄를 입증 받았다.
내가 기억하는 시인 이광웅은 해맑고 순수하며 다정다감한 예술인, 불의를 보면 분노할 줄 알고 타협하지 않는 강한 면모를 갖고 있었다. 70년대 중 후반 우리는 익산 이광웅 시인 집에서 만나 전위적 행위미술과 시적 예술 정신을 두고 많은 토론을 벌였다. 유신 독재 말미에 황폐해진 정신성에 대한 반항, 더욱 강렬해지는 전위성이 드러날 때였다.
내가 1981년 제3세계 연극제의 일환으로 삼일로 창고극장에서 ‘생명의 이벤트’를 할 때에 관중이 둘러 앉은 객석의 벽면을 향해 사과를 던졌던 것은 이광웅 선생의 얘기를 듣고 발상한 것이었다. 한 미친 사람이 오포 소리에 놀라 가게의 사과들을 오포 소리 방향으로 던졌다는….
이광웅을 끔찍하게 아끼고 사랑하던 아내 김문자는 정읍 집에 은거하면서 술로 세월을 보내었다. 거실 식탁 아래에는 1.5l 소주 페트병들이 뒹굴고 있었고, 안방의 벽면에는 흑백으로 된 두 사람의 사진이 서로를 마주보고 있었다고 한다.
‘나를 들여다보지 마시오 …/내 몰골을 들여다보지 마시오’로 서두를 뗀 시 ‘주시 망상’은 ‘내 가난한 노우트를 제발 들여다보지 마시오.’로 끝난다. 옥중 시집으로 알려진 ‘대밭’에 실린 시 한편 ‘주시 망상’. ‘가치 있는 일거리나 혹은 애정의 행각 같은 것/ 아무것도 없었소.’라는 대목에서 미친 놈 처럼 사과라도 무더기로 ‘그놈’들을 향해 던져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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