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만 보고 살았습니다. 숲을 보라는 가르침은 부분에 집착하다 전체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말씀일 테지요. 그 말씀 따른답시고, 숲만 보다가 정작 그 숲에 깃드는 새들은 놓쳤습니다. 당달봉사가 따로 없었습니다. 넘실대는 바람만 보다가 나뭇잎 끼리끼리 소곤대는 소리 흘리고 말았습니다. 귀머거리였지요. 나무만 보지 말고 숲을 보라는 말씀, 나무는 보지 말고 숲만 보라는 소리로 알아먹었습니다.
삼동(三冬)을 건너려 몸피를 줄인 거겠지요. 어깨를 겯은 거겠지요. 숲속 나무들이 잎을 떨궈 제 발등을 덮었습니다. 가려있던 가지가 드러났네요. 여름 숲 울울창창했던 것이 잎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마술 부리듯 연초록 보자기를 끄집어내, 초록으로 갈맷빛으로 때맞춰 바꾼 그 잎을 피워낸 가지가 있었습니다. 잎 피워올린 가지를 벌서듯 떠받친 몸통이 있었습니다. “날씨가 추워진 뒤에야 소나무와 잣나무가 늦게 시듦을 알 수 있다”지요. 겨울 빈 숲에 나와 압니다. 넉넉했던 품, 수만 장의 잎을 피워내고 떠받친 가지와 몸통의 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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