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극장가의 화두는 ‘남산의 부장들’이다. 상당 부분 사실에 바탕을 뒀는데 일부 픽션을 가미하면서 정치영화 치고는 이례적으로 전 연령층에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남산’은 사람의 얼굴에 비유하자면 코에 해당하는데 서울 전역을 한눈에 조망하기에 기가막힌 위치를 점하고 있지만 세월을 되짚어 보면 서글픈 사연들이 숨어있다. 일제치하 신사참배를 하던 곳이 바로 남산자락 이었고, 5·16 군사쿠데타 후엔 중앙정보부가 있던 곳이 남산이다. 중정을 창설했던 JP(김종필)가 김형욱을 비롯한 후임 중정부장들에게서 괴롭힘을 받은 곳이 남산이었다.
‘오치성 파동’으로 인해 카이제르 수염이 뽑혔던 SK(김성곤)를 비롯한 4인체제가 치욕적인 수모를 당한 곳도 바로 남산이었다. 마오쩌둥은“모든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박정희 정권 18년을 가능케 한 곳이 바로 남산이었다. 스페인의 프랑코, 대만의 장제스 총통처럼 박정희는 말만 대통령이지 실제론 총통처럼 전권을 가졌고 그 종말이 10·26 이었다. 박정희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의 사례에서 보듯 야당이나 재야단체가 반대할때면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하면서 밀어부쳤다.
후세의 사가들은 그에게 어떤 역사적 평가를 내릴지 몰라도, 현 시점에서 볼때 박정희가 남긴 가장 큰 과오 하나를 꼽는다면 호·영남으로 대표되는 지역갈등이다. 호남을 대표하던 김대중, 영남을 대표하던 박정희 간 1971년 대통령 선거가 결정적인 계기였다. 노골적인 지역감정이 횡행했고 선거 막바지 영남지역 전봇대에는 “호남인이여 단결하라”는 자극적인 선동 문구가 나붙었다. 건국이래 최고 선거판의 여우로 평가받았던 엄창록의 작품이라는게 정설인데 어쨋든 그 문구를 접한 영남인들이 어떤 선택을 했겠는가.
박정희 사후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박근혜, 문재인 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선거판은 곧 호남과 영남의 대결이었다. 노무현·문재인 대통령은 부산을 근거지로 한 영남 출신이었으나 전라도에서는 민주당 후보인 그들에게 몰표를 몰아줬다.
오래전 3김시대도 종식되고 이젠 적어도 선거에서 만큼은 지역감정이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여와 야의 극한대결이 장기화 하면서 4월 총선에서 자칫 호남 싹쓸이, 영남 싹쓸이 현상이 재연될 공산이 점점 커지고 있다. 많은 시간이 지났으나 참으로 묘한 일이다. 전북에만 국한하면 현재로선 2곳 정도를 제외하면 ‘민주당 독식’가능성이 크다는게 대체적 관측이다. 민주당 지지 여론이 압도적인 도민 정서를 감안하면 특정정당 독식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전국 지도를 놓고보면 마냥 좋아할 일이 아니다. 영남에서의 반작용 또한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할게 분명하다. 실제로 각종 여론조사 결과 영남에서 야권의 독식 가능성도 점점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과연 영남과 호남에서 특정 정당 지배현상은 언제나 끝날 것인가” 묻고 또 물어도 명쾌한 답을 구할 수 없어 답답하기만 하다.
총선이 70여 일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앞둔 두달은 평소의 반년 보다도 훨씬 긴 시간이다. 남자를 여자로 만드는 것 말고는 많은 일이 발생할 수 있는 엄청난 변수를 내포한 시간이다.
1992년 대선 일주일 전, 부산 초원복국집 사건이 발생하자 사람들은 모두 “YS는 끝났다”고 했지만 선거 결과는 김영삼의 낙승이었다. 2002년엔 대선 전날 정몽준과의 단일화가 깨지면서 “노무현은 끝났다”고 했으나 대역전극으로 끝난 일도 있었다. 과연 이번 총선때 승리의 여신은 누구에게 미소를 보낼 것인가.
/위병기 정치·경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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