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에서 화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이다. 서커스에서 외줄타기가 어렵다지만, 그보다 어려운 것이 대책 없이 예술가로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반면 예술가로서 살아가는 것보다 더 크게 만족스러운 일도 없다. 예술가는 꿈을 꾸는 사람이고, 늘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은 현실이 어려울수록 희망을 주기 때문이다. 현실이 각박할수록 예술가는 출구를 열어주는 메신저가 된다.
화가 이종만은 오랫동안 재직하던 교직을 버리고 전업화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2013년 이태리 베르가모 초대전에 응하면서부터인데, 당시 그는 개성 있는 비둘기 그림을 선보여 주목을 받았다. 살림집 옥상에서 여러 마리의 비둘기들이 노는 모습에서 영감을 얻은 그는 비둘기를 묘사하는데 필요한 색채를 미리 12개 정도의 그릇에 만들어 놓고 넓고 큰 붓으로 듬뿍, 시원스럽고 빠르게 필치를 구사하여 독특한 화면을 조성해 갔다. 재현에 근거를 두면서도 재현을 탈피해가는 신선한 화면이 만들어졌다. 비둘기의 동작이 필치의 중복 와중에 느껴졌다. 이종만 다운 회화성이 드러나게 된 것이다. 이태리에서 호평을 받은 이종만은 그 이듬해 비둘기와 화조도를 들고 다시 이태리 로메오갤러리에 도전하여 찬사를 받는다. 이때에는 보다 한국적인 것을 표현하고 싶어서 오방색에 민화풍이 가미된 화조도 시리이즈를 추가하게 된다. 이 두 가지 창의적 축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이종만의 중요한 작업 노선이 되었다.
학창시절 그는 선배의 화실을 방문했던 이남규 교수가 ‘당신의 그림이 자연재현적인 것인가, 창의적인 것인가를 생각하라’는 말을 곁에서 듣고 자연재현적인 것을 벗어난 창의적인 것이 무엇일까를 고민해왔다고 한다. 그래서 그의 비둘기 그림은 자연재현적이면서 동시에 추상적이다. 그는 대상을 묘사하지 않는다. 시원스럽게 그어지는 필획을 통해서 비둘기의 모습과 동작 그리고 본질이 느껴지도록 한다.
얼마 전 기린미술관 개인전에서 그는 농익은 회화적 기량을 뽐내고 있었다. 붓을 몇 자루 움켜쥔 채 정면을 바라보는 자화상도 그렇고, 벽에 걸어 둔 꽃을 그린 ‘마른 꽃 맨드라미’ 같은 경우에도 두텁게 느껴지는 마티에르와 더불어 회화적인, 더욱 회화적인 느낌을 끌어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의 표정은 밝지 않았다. 그림을 그리는 동료 화가들 외에는 보러 오는 사람조차 별로 없다는 것이다. 예술가도 먹어야 살기 때문에 구경거리로 전락하는 것을 기쁘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는 몇 개월 후에 있을 서울에서의 초대전에 기대를 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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