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위기 경보가 심각 단계로 격상 되면서 문화예술계의 시계는 마치 멈춘 것만 같다. 극장과 전시장, 행사와 강연, 교육과 지원사업까지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을 모으는 모든 곳의 일정이 취소되거나 무기한 연기되었다. 같은 처지의 예술인들을 만날 때면 누가 먼저랄 것 없이 “이제 어떻게 해야 하느냐”며 두려움과 막막함을 쏟아내고 우리 중 누구도 코로나바이러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에 대한 공포감이 엄습한다.
맞다. 정말 두렵다. 돈을 벌 수 없으니 현실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상당한 타격을 받고 있다. 아무것도 할 수없이 무기한 기다려야 하는 이 상황이 지치고 점점 화도 난다. 마치 내가 입은 피해가 ‘무책임하고 무능력한 특정한 누군가 때문에 발생된 무자비한 바이러스’로 느껴진다. 그렇게 한참동안 비난의 화살을 퍼붓다가 퍼뜩 깨닫는다, 어쩌면 나는 이 어려운 현실을 감당할 수 없기에 마땅한 분노의 출구가 필요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이 익숙한 방식은 내가 겪었던 혐오와 몹시 닮아있다. 4년 전 연극작품 보조금 신청을 위한 면접을 준비하던 중 한 선배가 나를 향해 물었다. “보조금 타내려고 단체 만들었니? 실력도 없는데 돈 욕심 때문에 물 흐리지 마라” 면전에서 들은 이유 모를 비난을 생각하면 지금도 얼굴이 화끈거리고 가슴이 떨린다.
시장이 형성되지 않은 지역 문화예술계에 대다수의 생계수단은 보조금이다. 때문에 새로운 단체가 나타날 때면 파이를 빼앗긴다는 두려움 때문에 배재와 혐오의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곤 한다. 가난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 우리지역에 예술시장이 자리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민들을 위한 예술은 무엇이고 전향적 변화를 위해 예술가와 행정은 어떻게 상생해야 하는지 등의 협력의 방법을 찾지 않은 채 그저 서로의 파이를 잃지 않기 위해 아등바등 서로를 미워하는 날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창궐의 원인은 무분별한 생태계 파괴와 서식지를 잃은 야생동물들의 포획, 식용으로 비롯되었다고 한다. 절제되지 않는 인간의 정복욕에 대한 자연의 경고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근본적인 물음을 외면한 채 특정대상을 향한 손 쉬운 배척과 혐오만을 일삼고 있다. 또한 집단감염으로 많은 수가 사망한 폐쇄병동의 정신장애인을 보면서도 신종바이러스로 인해 가장 고통 받는 위치에 누가 놓이는지에 대해서 외면해버리곤 한다. 몇몇의 사악한 인간들은 바이러스를 도구화하여 선동하거나 여론을 악용하여 권력을 쟁탈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이고 있다.
‘무엇이 우리를 안전하게 할까?’ 라는 질문은 또 다른 언쟁을 발생시킨다. 이 물음이 더욱 지혜로워 지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협력할 수 있을까?’ 혹은 ‘어떻게 우리는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연을 해치지 않으면서 평화를 유지하고 인간적인 존엄을 지키면서 발전하려면 상생의 자세를 가져야 한다.
타인과 타생명체를 대하는 방식에 대한 성찰로부터 예술도 시작된다. 배제와 불신으로는 예술이 성장 할 수 없다. ‘각자도생’이 표제어가 된 현실이지만 예술의 힘과 기능은 여전히 살아 움직일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선함을 깨닫고 이를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이렇게 우리는 어려움을 통해서 배우고 다시 성숙해질 것이다, 아니 꼭 그래야만 한다, 그러길 바란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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