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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장애인 인식의 역사

김주은 도르 대표
김주은 도르 대표

조선시대 우리나라는 장애인의 대우와 인식은 긍정적이며 선진적이었다. 하지만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부정적으로 쇠퇴되었으며 현재 우리의 장애인식에 영향을 주었다.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의 흐름에 따른 장애인 인식 변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이 글은 정창권의 「근대 장애인사」의 내용을 정리, 재조합하여 글쓴이의 의견을 덧입힌 것으로 원작의 흐름과 다를 수 있음을 밝힌다.

먼저 조선시대의 장애인 대우와 인식을 알아보자.

조선시대엔 지능에 문제가 없는 척추장애인, 건강장애인(뇌전증), 지체장애인 등은 장애와 상관없이 과거를 보아 관직에 나갈 수 있었고, 능력만 있다면 정 1품 정승까지 오를 수 있었다.

또 시각장애인은 점을 치는 점복, 경을 읽어 질병을 치료하는 독경, 악기를 연주하는 악사와 같은 직업을 가졌다. 이에 세종대왕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관직으로 명과학, 명통시, 관현맹인을 설치하여 장애인을 국가 차원에서 지원하였다.

그 외 교육이 어려운 지적장애인, 언어장애인 등은 가족이 부양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으나 국가에서도 ‘시정’이라고 하는 오늘날의 활동보조인을 제공하고, 자립하기 어려운 중증 장애인은 재생원 같은 구휼 기관을 통해 구제하는 등 다양한 복지 정책을 펼쳤다.

조선시대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뛰어났기 때문에 이러한 복지 정책을 시행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에는 장애인을 ‘단지 몸이 불편한 사람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라고 인식했다.

때문에 오늘날처럼 장애를 완전하지 못한 존재로 생각하지 않았고, 한계나 극복의 대상으로도 보지 않았다. 오직 그 사람이 지닌 능력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장애’에 국한되지 않고 직업을 가질 수 있었고 존중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장애인 인식은 부정적으로 바뀌었다.

근대화로 단순노동 위주의 장애인 직업은 사라져갔고, 점복과 독경을 미신으로 여기고 금지했다. 또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수탈로 많은 장애인은 심각한 생활고를 겪게 되었다.

그 결과, 장애인들은 구걸로 생활을 연명할 수밖에 없었고, 이때부터 우리는 장애인을 불쌍한 존재로 인식했다.

근대의 부정적인 장애인 인식은 장애인을 용어의 변화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민간에선 장애인은 ‘병신’이라 부르곤 했다.

여기서 병신이란 오늘날처럼 조롱이나 비하, 욕설의 의미가 아니라 장애를 고치기 어려운 고질병으로 인식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개화기에는 장애인을 ‘불구자’로 불렀다.

이는 ‘후구샤(不具者)’라는 일본에서 온 말로 ‘~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란 뜻이다. 즉 기능적으로 결함을 가진 사람을 의미한다. 이는 한번 장애를 입으면 고칠 수 없는, 즉 나을 희망이 없이 평생 불구자로 살아야 하는 존재로 인식한 것이다.

이와 같이 장애인을 불쌍하고 희망이 없는 존재로 여기는 인식은 근대화와 일제강점기로 인해 생겨났다.

우리는 일제로 인해 가지게 된 부정적인 장애인 인식을 지양하고, 조선시대 때의 우리 고유의 긍정적인 장애인 인식을 다시 되새길 필요가 있다.

장애는 바꿀 수 없으나, 장애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바꿀 수 있다.

장애인도 그저 나와 같이 세상에 하나뿐인 존재로, 하나뿐이기에 나와는 다른 존재로 인식하길 바란다.

우리가 장애를 떠나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고 더 나아가 배려한다면 장애인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제는 사라질 것이다.

/김주은 도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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