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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알록달록 색을 더해가는 전주한옥마을 담벼락. 낯설게 고요하다. 익숙한 재잘거림이 사라진 거리에 상인들의 한숨이 나뒹굴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코로나19는 평범했던 일상과 특별했을 계획을 모두 얼어붙게 했다. 소살소살 흘러온 봄을 보고 있자니 더욱 야속해진다.

“사람이 아무 살도 안 띠고 평생을 순탄하게 살기는 아무래도 어려운 법이란다. 누구라도 한두 가지 살은 맞게 되어 있지마는, 그러더라도 어쩌든지 제가 미리 알고, 조심허고, 뛰어갈 거 걸어가고, 소리칠 거 어루만지고, 그렇게 삼가면, 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가벼이 지나간단다.”(소설 「혼불」 중)

전주시의 지침으로 도서관·박물관·체육관 등 대부분의 공공시설은 문을 닫았지만, 최명희문학관을 비롯한 일부 민간위탁 문화시설은 정상 운영하며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문학관 역시 다수의 사람이 모이는 문학강연·문학기행·체험행사·문학제 등 모든 행사를 잠정 중단한 상황이다.

출근길 전주사고 근처를 지나니 과거 조상들은 전염병을 어떻게 이겨냈을까 궁금증이 인다. 지금보다 의학지식도 첨단장비도 부족했던 왕조시대에는 심각한 국가위기를 어떻게 이겨냈을까. 그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지혜는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에는 1,455건의 전염병 기록이 등장한다. 1392년부터 1917년까지 연평균 2.73회 발생했다. 임금별로 보면 숙종이 25회로 가장 많았고, 영조(19회)와 현종(13회)이 뒤를 잇는다. 유행 빈도는 3월(12.3%), 2월(12%), 4월(10.4%) 등 봄철이 34.7%로 가장 많다. 겨울에 시작해 봄에 확산된 코로나19의 상황과 비슷하다. 병자 격리, 처방문 배포, 위생관리, 구휼미 제공 등 대응 방안도 지금과 유사한 부분이 눈에 띈다.

1437년 봄 전염병이 진제장(무료급식소)을 휩쓸어 수많은 백성이 사망하는 일이 발생했다. 1444년 또다시 역병이 돌자 세종은 “7년 전의 전처를 밟으면 안 된다.”라며 빈민들을 분산 수용하고 질병에 걸린 사람은 다른 사람과 섞여 살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내렸다. 1526년 중종은 ‘평안도로 의약품을 내려보내 마음을 써 치료하도록 하고, 또한 중앙에서 제사 지낼 것을 예조에 말하라.’라며 피해자의 영혼을 위로하고자 했다. 1613년 2월 광해군은 백성들이 병에 대처할 수 있도록 전염병 매뉴얼인 『신찬벽온방』을 전국에 배포했는데, 물을 반드시 끓여먹고, 옷가지를 삶아서 입고, 몸을 깨끗하게 하고, 고여 있는 물을 퍼내어 쓰라고 적혀 있다.

기록 속 조상들의 모습에서 전염병을 개인의 희생이 아닌 사회문화적 문제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엿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현재로 이어져 코로나19를 막는데 큰 힘이 되고 있다. 전주에서 시작한 착한 임대료 운동과 재난기본소득을 비롯해 사회적 약자를 위한 기부, 피해지역 의료봉사, 사회적 거리두기, 예방수칙 지키기 등 사회 전반에서 서로를 배려하는 기분 좋은 소식들이다.

과거에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공동체 문화를 강화하는 것이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은 재물을 풀어 마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병으로 농사를 못 짓는 가정을 위해 이웃에서 대신 농사를 지어주는 것.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힘든 상황에서도 희망을 품는 이유이다. 우리는 이 위기를 잘 이겨내고 소중한 일상으로 반드시 돌아갈 것이다. 설령 코앞에 삼재 팔난이 닥칠지라도….

/문지연 최명희문학관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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