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사찰이나 古家집에 가보면 나무기둥 밑에 자연석을 놓고 그위에 기둥을 세운 것을 볼 수 있다. 흙바닥 위에 세운 기둥은, 상식적으로 깨지고 썩고 미끄러워지기가 쉽기 때문이다.
현대 건축물은 콘크리트 구조로 기초를 만들어 그 위에 기둥을 세우지만, 콘크리트를 만들지 못했던 그 시대에는 자연석 기초를 세워 기둥을 똑바로 세운 것이다.
그래서 옛날에는 집을 지을 때 기둥 밑에 자연석 주춧돌을 받쳐 놓고 집을 지었다. 그렇지만 자연에서 구한 돌들의 모양은 울퉁불퉁 다양한 형태의 돌들이다. 표면이 평평하지 못한 울통불퉁한 자연돌을 다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였다.
그러나 톱과 대패를 이용해서 만든 나무기둥의 밑면은 평평하여 자연석 위에서 서로 맞지를 않는다. 따라서 표면이 고르지 못한 주춧돌 위에 기둥을 얹기 위해서 단단한 돌을 평평하게 깎는 어려움보다 옛 장인들은 더 깎기 쉬운 나무 기둥의 밑부분 단면을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단면과 꼭 맞도록 깎아내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이렇게 울퉁불퉁한 주춧돌의 표면과 나무 밑기둥이 꼭 맞도록 하기 위해서 기둥의 밑둥 단면을 깎아내어 돌과 기둥 밑면이 밀착되게 만드는 것을 건축용어로 “그렝이 질” 이라고 한다.
나무기둥 밑 그렝이질이 잘된 기둥은 못이나 접착제 없이도 쉽게 넘어지지 않고 단단하고 꼿꼿하게 서 있다. 이렇게 기둥 밑과 주춧돌 면이 밀착되어 딱 맞는 경우, 주춧돌이 매끈한 돌이라면 지진이나 강풍에 의해 기둥이 밀려갈 수 있지만, 목구조의 경우 울퉁불퉁한 주춧돌 위에 서 있어서 쉽게 밀리지 않고 오히려 표면이 거친 주춧돌 면이 기둥을 안전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하게 한다.
어찌보면 현대적 건축공법에는 콘크리트에 앙카볼트를 박거나 기둥 중앙에 철물 심을 박아 기초와 일체되게 할수도 있겠지만 그런 인공 공법이 아닌 자연석를 가공하지 않고 주춧돌 거친 표면과 일체되게 기둥 하부를 가공하여 밀착되게 만든 옛 선인들의 지혜를 생각해 본다.
고대 잉카문명의 숨결이 스며든 마추픽추의 돌담도 밑돌 모양에 딱 맞게 상부돌을 가공하여 마치 반죽한 흙벽돌 쌓은 것처럼 면도칼도 들어갈 틈이 없이 밀착공법을 한 것이나, 바람이 강한 제주의 돌담들이 밀리지 않는 이유는 서로 다른 모양의 돌들끼리 아귀를 맞추어 잡아주는 힘이 생기게 만든 원리이다.
이와같이 성격이나 형태가 서로 다름이 만날 때 한쪽 모양이 거칠고 울퉁불퉁해도 다른 하나의 모양이 불규칙한 형태에 맞추어 감싸 준다면, 상충된 그 둘의 만남은 세상 무엇보다 더 견고한 결합을 이룰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현대사회는 다양성과 다원화가 사회 저변에 형성된 시대이다.
나의 주변에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이 울퉁불퉁하다고 해서 그 사람을 피하고 미워하려고만 하기보다는 서로가 다른 그 마음에 어떻게 조화롭게 맞추어 줄 수 있는지 생각해 본다.
지금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역병에 의해 유사이래 경험해 보지 못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현상을 겪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밀착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간의 감정과 사랑을 표현하지 못하는 일시적 현상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눈빛만으로 의사 전달해야 하는 시기에 오늘도 서로 다름의 상황을 인식하여 주변을 배려하고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그렝이 질” 많이 하는 그런 날들이 되었으면 좋겠다.
/추원호 건축사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