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제출신인 미래통합당 이종성 국회의원(50, 비례대표)은 장애인 복지 전문가로 국회에 입성했다. 한국지체장애인협회에서 26년 동안 활동했고, 사무총장으로 7년을 일했다.
이 의원은 어린 시절 앓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두 다리를 쓰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중학교에 입학 할 무렵 전주에서 서울로 전학을 왔다. 그는 “초등학교 때까지는 아버지가 업거나 자전거를 태워 통학을 했는데, 중학교에 입학할 무렵 문제가 생겼다”며 “장애인이 계속 지내기엔 인프라가 부족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결국 고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서울에 올라와서 열심히 공부했다. 그의 공부를 위해 어머니가 쏟은 열정도 대단했다. 그는 과학자의 꿈을 키웠다. 그러나 대학입시 직전 좌절을 겪었다. 이 의원은 “학교에서 중증장애인의 경우 실험 실습이 힘들다며 이공계열에 진학하지 않았으면 하는 의견을 피력했다”며 “사실상 거부를 당한 셈”이라고 밝혔다.
결국 이 의원은 가족들과 상의한 끝에 중앙대학교 회계학과에 진학했다. 대학을 졸업할 무렵 다시 한 번 좌절이 찾아왔다. 이 의원은 “학교도 괜찮고 특성화된 과라 동기들은 취업이 잘됐다”며 “그러나 나는 잘 안됐다”고 밝혔다. 이어 “나중에는 미안해서 (교수한테) 추천장도 받지 못하는 순간이 왔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은 장애인 단체에 취업했다. 이후 한국지체장애인협회 사무총장, 문화체육관광부 체육국 장애인문화체육과 과장, 한국장애인고용안정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다가 미래한국당(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으로부터 정치권 영입을 제안 받았다. 이 의원은 “보통 장애인 단체 대표에게 영입 제의가 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사무총장인 실무진에게 연락을 왔다”며 “보수 정당의 색채를 갖고 점진적으로 장애인 인권과 복지 문제를 점진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진보 진영에서 실시한 최저임금제가 고용취약계층인 장애인에게 역효과를 나타낸 점도 영향을 미쳤다”고 덧붙였다.
게다가 “장애인 문제는 장애인 당사자가 잘 알기 때문에 직접 풀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다”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인 세력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지금 이 의원은 21대 국회활동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 20대 국회에서 폐기된 장애인 관련법안들이 주된 관심사다. 그는 “20대 국회에서 1만5200개의 법안 가운데 장애인 관련 법안이 180개”라며 “그 법안들 가운데 중요 법안은 회생시키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고 했다.
개인적으로 발의할 법안으로는 65세 이상 장애인의 사회활동을 지원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 등에 관한 법률’개정안을 준비하고 있다. 상임위원회는 보건복지위원회를 희망하고 있다.
고향을 향한 애정어린 말도 잊지 않았다. 이 의원은 “1981년도에 떠났지만 고향에서는 나를 여전히 기억하고 있었다”며“이 자리를 빌어 당선됐다고 축하 현수막을 달아주신 금산면 이현종 면장님과 마을 분들께 정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국회의원으로써 지역에 기여할 수 있는 방법을 반드시 찾겠다”고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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