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자신의 삶을 걸고 성폭력피해를 공론화 한 여성예술인들이 있다. 법이 공정하게 잘못을 심판 해줄것이라 믿으며, 더 이상은 이런 아픔이 반복되질 않는 사회가 되길 바라며.
지난 6월 19일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의 가해자 박교수의 보석신청이 허가되어 석방되었다. 동료교수와 제자를 강제로 성추행하여 1년형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된 지 135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이에 분노한 전국의 75개의 여성단체와 인권단체, 시민들이 모여 기자회견을 열고 재판과정 중 피고인의 권리만을 신경 쓸 것이 아니라 피해자의 권리 또한 곤정하게 보장되어야 한다는 내용과 함께 2차 피해를 준 것에 강력하게 규탄하며 피해자와 끝까지 연대하겠다고 공표했다. 또한 힘든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한 번 용기를 낸 피해자의 발언문도 낭독 되었다.
“저는 혼자이지만, 혼자가 아닙니다. 저의 피해사실은 저만의 것이 아닙니다. 수 십년간, 그에게서 갑질과 성폭력을 당해온 많은 선배, 동기, 후배의 이야기입니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에도 열 세명의 변호사를 선임한 박교수가 두렵습니다. 그의 영향력이 어디까지 미칠지 무섭습니다. 그렇지만 당하면서도 당했다고 말하지 못하는 수많은 ‘나’를 위해, 또 다른 피해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박교수를 제발 엄중하게 처벌해주십시오.”
그 자리에서 함께 구호를 외치던 나는 여러가지 생각들로 복잡해졌다. 어떤 문장과 수식어를 붙여도 결코 다 담길 수 없을 투쟁이 일상이 되어버린 피해자들의 고민과 눈물의 날들이 떠올랐고 어떤 곳에서도 피해예술인들을 보호하지 않았던 문화예술계 내부의 차가운 현실을 깨달았으며 아무리 외쳐도 갖춰지지 않는 제도적 한계에 절망스러웠다. 또한 이 모든 상황을 여전히 남의 일로 치부하는 동료들의 무관심과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을 쓸어내리며 아파할 사랑하는 사람들의 걱정 어린 그 마음이. 한 순간에 뒤섞여 눈물이 되어 아프게 흘러내렸다.
재작년 미투의 국면을 넘은 문화예술계 내부에서는 성폭력 없는 안전하고 평등한 창작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작은 움직임이 있었다. 그러나 피해예술인의 보호와 회복, 복귀에 대한 논의는 미비했고 제도적 측면에서의 공론화 방안과 가해행위자의 징계처리 규정에 대해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한 채 사안은 흩어져버렸다. 아직도 문화예술계의 성폭력을 일회성의 ‘이슈’나 ‘사건’정도로 밖에는 인식하지 못하는 문화예술계 내부의 분위기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이번 전북 문화예술계 박교수 성폭력 사건 또한 2차 피해와 긴 재판과정의 피로감을 오롯이 피해예술인이 감당해야만 하는 상황을 초래했으며 미투 이후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문화예술계의 제도적 한계를 여실히 보여주었다.
더 이상은 피해예술인이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 현장을 바꾸려는 노력을 그 누구도 방관해서는 안 된다. 다양한 단위에서 이 과정에 적극 개입하고 피해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제도로써 그들을 보호하고 지침으로 가해자를 엄중하게 징계하는 분명한 변화가 필요하다. 그리하여 어떤 피해예술인도 자신이 사랑하던 예술을 떠나지 않는 안전한 창작현장을 만들어야 한다. 그것만이 이제껏 맨발로 가시밭길을 걷겠다 마음먹은 피해예술인들을 위한 진정한 위로이자 성폭력 근절의 대안이며 평등하고 안전한 문화예술계로 거듭나는 안전판이 될 것이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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