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수기 수위조절 실패 탓 수해 키워
60년 전 매뉴얼 지금까지 적용 문제
자치단체 참여 물관리체계 만들어야
지난 8일 수마가 할퀴고 간 남원 임실 순창지역 수해지역은 그야말로 처참했다. 섬진강 제방이 터지면서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한 남원 금지·송동·대강면 일대는 침수된 주택의 지붕 꼭대기만 드러났다. 임실 덕치와 순창 유등·동계·적성면 일대도 쓰나미 같은 강물이 갑자기 마을로 밀려들어 오면서 주민들은 허겁지겁 간신히 몸만 빠져나왔다.
물 빠진 마을은 더욱 참담했다. 평온했던 마을은 폐허로 변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집 안에는 각종 쓰레기 더미와 가재도구 등이 나뒹굴고 마을 곳곳엔 가축 사체가 너부러져 썩는 냄새가 진동했다. 벼와 콩 등 작물이 자라던 논밭은 토사와 자갈이 뒤덮여 하천으로 변해 버렸다. 이러한 참혹한 광경에 마을 주민들은 복구할 엄두조차 못 낸 채 망연자실할 뿐이었다.
용담댐 하류인 무주와 충남 금산 충북 영동·옥천면 일대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갑작스러운 용담댐 방류로 금강이 범람하면서 마을과 농경지를 덮쳐 애지중지 키워 온 사과와 인삼 등 농작물이 초토화되고 말았다. 설상가상, 아직 피해 복구도 안 된 상태에서 역대급 태풍인 ‘바비’가 상륙한다는 소식에 수재민들의 걱정은 태산이다.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을 잃은 주민들은 이번 수해가 인재(人災)라며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비가 많이 내리는 상황에서 섬진강댐과 용담댐의 방류량을 급격히 늘렸기 때문이라고 강변한다. 실제 섬진강댐은 폭우가 예보된 6일까지도 초당 200~300t을 방류했다. 하지만 7일부터 400mm가 넘는 폭우가 내리자 8일 오전부터 초당 1870t까지 방류량을 급격히 늘렸다. 용담댐 역시 장마가 시작되면서 초당 200∼300t씩 방류했지만 8일 오전부터는 최대 방류량에 육박하는 초당 2900t씩을 내려보냈다. 기록적인 폭우에다 한꺼번에 댐 방류량을 늘리면서 마을과 농경지는 순식간에 물바다로 변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이 아닐 수 없다.
수자원공사에선 방류 매뉴얼대로 집행했다는 입장이지만 급격한 댐 방류로 인해 하류지역의 침수 피해가 커졌다는 지적에선 자유로울 수 없다. 댐의 최우선적 기능은 홍수 관리다. 섬진강댐관리 규정 제7조에는 ‘홍수기에는 홍수조절이 생활용수나 발전용수 등 다른 용도보다 최우선 한다’고 규정해놓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홍수 조절을 위한 댐으로 인해 홍수 피해를 본 것이다.
문제는 섬진강댐 관리규정이 지난 1961년 설계 당시에 정한 대로 지금까지 적용되고 있다는 점이다. 1965년 완공된 섬진강댐의 계획홍수위는 197.7m, 홍수기제한수위는 196.5m로 불과 1.2m에 불과하다. 집중호우 전날인 6일까지 홍수기제한수위보다는 낮은 193.46m 수준에서 수위를 조절했지만 폭우로 순식간에 계획홍수위를 넘기자 평상시보다 10배가 넘는 양을 방류하면서 피해를 키웠다. 예비 방류 등을 통해 댐 수위를 낮춰 홍수기를 대비했어야 했지만 댐 운영관리에 실패한 것이다.
댐 관리의 주체도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섬진강댐 운영은 현재 한국수자원공사와 농어촌공사 한국수력원자력 등 3개 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피해지역 시장군수가 수자원공사 사장을 만났을 때 수공 사장은 홍수기제한수위를 넘기기 전에는 우리 맘대로 댐을 비울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즉 농업용수, 발전용수 확보 등을 놓고 물 관리 주체들의 입장이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홍수기 예비 방류를 못한 것은 물 욕심 때문에 빚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조명래 환경부 장관은 섬진강·용담댐 관리조사위원회를 발족하고 댐 관리운영 실태 조사에 나섰지만 남원 순창 임실 등 하류지역 7개 자치단체는 강력히 반발한다. 피해 자치단체의 참여 없는 조사는 무의미하다는 입장이다.
이번 섬진강댐과 용담댐 하류지역 수해는 댐 운영관리의 실패에서 비롯된 인재(人災)다. 댐 관리 주체는 피해 주민들에게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정부는 종합적인 물 관리 체계를 세우고 자치단체가 함께 참여하는 홍수관리 컨트롤타워를 만들어야 마땅하다.
/권순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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