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님 진상품 어리굴젓
매콤새콤 하면서도 톡 쏘는 탱글탱글한 맛이 일품 어리굴젓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물결 타고 달빛 따라 간월도로 모여라. 황해바다 석화야! 석화야! 이 굴밥 먹으러 간월도 달빛 따라 모두 모여라 석화야…’. 매년 정월 대보름이면 충청남도 서산시 부석면 간월도 부녀자들은 소복을 입고, 이 노래를 부르면서 특산품인 ‘굴’을 위한 제를 올린다.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다. ‘굴’ 풍년을 바라는 지역민들의 간절함이 담긴다. 옛부터 이곳 지역민들은 이 굴로 ‘어리굴젓’을 담가 먹었다.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 될 만큼 유명세의 명맥이 긴 ‘간월도어리굴젓’이다. 어리굴젓은 서산시가 자랑 하는 ‘9미(味)’ 중 하나다.
무학대사
그리고 어리굴젓
무학대사(1327-1405·고려 충숙왕 14년-조선 태종 5년)와 어리굴젓은 어떤 인연이 있을까? 서해 조수 간만의 차이로 밀물 때는 바다에 떠 있는 모습이고, 썰물이면 뭍과 바다길이 연결되는 신비스러운 섬인 간월도 간월암(看月庵). 무학대사가 수도하던 중 ‘달을 보고 도를 깨우쳤다’며 그가 이름 붙인 암자다. 서산9경 중 3경으로 평소에도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다. 무학대사가 태어난 곳은 간월암과 멀리 않은 현재 서산시 인지면 애정리다. 이곳에는 무학대사 탄생 과정 등이 담긴 기념비가 있다. 기념비에 따르면 만삭인 채씨가 서주관아로 끌러가던 중 이곳에 이르러 길 옆 우물가에서 아기를 낳았는데, 그가 무학이다. 채씨가 우물주변 아득한 곳에 아기를 뉘인 뒤 쑥을 뜯어서 덮어주고 관아로 끌려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학이 아기를 품고 있다가 날아갔다는 내용이 기념비에 있다. 무학대사는 고려의 국운이 기울 무렵 태조 이성계를 도와 조선왕조를 개국한 공으로 태조가 등극하자 왕사가 된다. 한양 천도를 주도하기도 했다. 역사적 기록은 없지만 무학대사가 태조 이성계에게 간월도어리굴젓을 진상 했다고 구전된다. 대표적 역사적 기록은 세종실록 45권에 중국 사신이 궁중에서 사용할 해산물을 요청하자 진상품인 굴젓 3병을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세종대왕도 어리굴젓을 즐겨한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에는 고춧가루가 없었기 때문에 현재의 고루가루가 가미된 붉은 어리굴젓이 아닌 소금으로 염장한 어리굴젓이었을 것으로 예측된다.
어리굴젓
이름의 유래
서산은 예전부터 바다의 우유로 불리는 굴 생산이 많았던 곳이다. 그러나 바다에서 자연산으로 딴 생굴을 다 소비할 수 없었기에 이를 저장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소금에 염장을 한 젓갈로 만드는 것이었다. 전국에서 굴로 젓갈을 만든 곳은 서산이 유일했다. 그 젓갈이 어리굴젓이다. 서산이 어리굴젓 고장이 된 이유다. 어리굴젓 이름의 유래는 명확하지 않다. 고춧가루로 양념을 하기에 먹었을 때 입안이 ‘얼얼하다’고 해서 어리굴젓이라는 설이 있다. 이곳 굴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작은’, ‘다 자라지 않은’이라는 뜻을 지닌 ‘얼=어리’라는 접두사가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짜지 않게 담근 김치를 ‘얼갈이김치’라 부르듯 짜지 않게 담근 젓갈을 ‘어리젓’이라는 데서 ‘간을 심심하게 담근 굴젓’이라는 얘기도 있다.
간월도 굴
간월도 굴은 조수 간만의 차이로 생겨난 갯벌과 알맞은 햇빛에서 성장하기 때문에 색깔이 검고, 알이 작은 게 특징이다. 간월도 갯벌은 작은 자갈부터 큰 바위까지 많은 돌이 있는데, 이러한 돌에 붙어 있는 굴은 24시간 밀물과 썰물에 노출, 크게 성장할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러나 이 굴은 물날개(굴에 나 있는 명털)가 잔잔하고, 그 수가 많아 사이사이에 고춧가루 양념이 속까지 잘 배 어리굴젓 특유의 맛을 낸다. 그만큼 간월도어리굴젓은 일반 굴젓에 비해 육질이 단단하고, 오돌오돌한 식감에다 굴 특유의 바다내음이 풍부하다. 이곳 주민들은 간월도 앞바다에서 이 맘 때쯤부터 내년 3월까지 굴을 캔다. 조새(돌이나 바위에 붙어 자라는 굴을 따고, 그 안의 속을 긁어내는 데 쓰는 연장)를 이용해 굴을 따고, 바구니에 담는다. 물이 빠지는 썰물에 굴 따기 작업을 하는 데 하루 평균 5-6시간 정도다. 간월도 어촌계원 60여명이 딴 굴은 어리굴젓 생산 공장에 판매된다. 지난해 어리굴젓 생산 공장이 어촌계원들에게 매입한 굴은 30t에 이른다.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
굴은 이곳 주민들의 주요 소득원 중 하나다. 어리굴젓과 함께 영양굴밥이 유명하다. 그러기에 매년 굴 풍년과 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제를 올리고 있다. 매년 정월 대보름에 ‘간월도 굴부르기 군왕제’를 한다. 100여 년 전부터 이어지고 민속제례다. 특이점은 마을 남성들은 제례에 참여할 수 없다는 것. 바닷물의 만조시간에 맞춰 소복을 입은 부녀자들이 풍악과 함께 깃발을 앞세워 머리에 굴을 담은 소쿠리를 이고 제의식을 알리는 거리행진을 시작한다. 굴을 캐는 모습을 형상화한 조형탑인 ‘간월도어리굴젓기념탑’이 이르러 옹기종기 앉아 굴을 따는 작업을 시연한다. 용왕에게 제를 올린 뒤 부녀자들이 징, 북, 꽹가리를 두드리며 바닷가로 몰려가 춤을 추면서 굴밥을 바다에 뿌리고 한바탕 놀이로 끝을 맺는다.
어리굴젓 명인
무학표 간월도어리굴젓 유명근 대표
어리굴젓도 명인이 있다. ‘해양수산부 대한민국 수산전통식품명인 6호’이자 ‘서산시 어리굴젓 제조명인’인 무학표 간월도어리굴젓 유명근 대표. 유 대표가 강조하는 어리굴젓은 전통방식 그대로다. 그는 어리굴젓 전통 지킴이를 자처한다. 간월도 어촌계에서 생산한 굴 전량을 비롯, 인근까지 엄선한 굴만 매입한다. 이렇게 사들인 굴은 해마다 150t정도다. 어리굴젓을 만드는 방식은 의외로 복잡하지 않다. 매입한 굴을 깨끗하게 세척을 하고, 천일염으로 염장해 일정온도에서 10일간의 숙성기간을 거친다. 2차 세척을 한 뒤 태양초 고춧가루로 버무리면 끝이다. 고집스럽게 전통방식을 고수한 그에게 명인의 수식어가 붙었다. 유 대표는 매콤새콤 하면서도 톡 쏘는 탱글탱글한 맛이 어리굴젓의 자랑이라고 엄지척이다. 몇 해 전부터는 해외로 눈을 돌렸다. 어리굴젓 세계화를 위해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세계 곳곳에 어리굴젓을 보내고 있다. 유 대표는 “간월도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다 보니 극한을 이겨낸 이곳 굴은 비록 크기는 작지만 향은 어느 곳의 굴보다 강하다. 당연히 영양분도 많고 맛도 좋지요”라며 “굴을 발효시켜 고춧가루만을 넣어 만든 어리굴젓은 서산이 만든 세계적인 위대한 음식”이라고 강조했다.
/한신협·대전일보=박계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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