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기사 다음기사
UPDATE 2024-12-11 17:39 (수)
로그인
phone_iphone 모바일 웹
위로가기 버튼
chevron_right 오피니언 chevron_right 청춘예찬
일반기사

우리는 더 이상 당신의 권력이 두렵지 않습니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2019년 9월, 여성신문으로부터 전화 한통을 받았다. “송원님, 양성평등문화상 신진여성문화인상 수상자로 선정되셨습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공개기자회견을 통해 문화예술계 내 성폭력을 고발하고, 활동가의 삶을 병행한지 1년 만에 일이었다. 아무리 외쳐도 바뀌지 않는 폐쇄적인 분위기에 지쳐 자책이라는 깊은 수렁에 빠진 나에게 선물 같은 수상이었다. 지치지 말라고, 잘하고 있다고, 지금처럼 계속 외쳐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다시 달릴 힘이 생기는 순간이었다.

2018년 2월 26일. 전북지방경찰청에서 언론사를 통해 극단대표의 성폭력사실을 고발했다. 여전히 선명하게 기억나는 그날의 감정은 두려움과 외로움이었다. 피해자가 자신의 얼굴을 공개하겠다고 선언한 미투에 많은 언론사가 관심을 가졌고 수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자들과 카메라가 몰려들었다. 그에 비해 함께 손을 잡고 기자회견을 가줄 동료들은 손에 꼽았다. 난생 처음해보는 기자회견 이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어서 두려웠고, 함께 싸워줄 동료들이 없어서 외로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말하고 싶었다. 내가 잘못한 일이 아니라고. 잘못을 한 사람이 벌 받는 세상이 오기를 바란다고.

이후 지역 여성단체로부터 집회가 열린다며 발언을 해주길 바란다는 연락을 받았다. 참여하고 싶지 않았다. 기자회견 이후 피해자답지 않다는 말에 잔뜩 주눅이든 상태였고 거의 외출을 하지 않는 상태였다. 어쩔 수 없이 나간 그 곳에서 엄청난 광경을 목격 하게 되었다. 정말 많은 여성들이 손수 만든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었다. 태어나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다. ‘함께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 ‘가해자는 감옥으로, 피해자는 일상으로’ 그녀들은 어떤 이유로 내 아픔을 나눠가져갔을까? 우리는 무엇으로 연결되어 있을까?

한 활동가 선생님이 내게 다가오셨다. “송원 씨의 삶에서 가치 있다고 믿는 것을 하면서 살아도 괜찮아요. 송원 씨의 남은 삶을 응원해요. 나의 위드유에요” 나조차도 나를 끝없이 피해자의 위치에 놓고 검열했던 과거에서 탈출하는 순간이었다. 새로운 질문을 할 힘이 생기기 시작했다. 권력형 성폭력의 공통적 특징을 공부하고 누가 가해자에게 권력을 쥐게 했는가,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권력을 남용할 수 있게 했는가를 파헤치기 시작했다. ‘연극정신’이나 ‘헝그리정신’이 숨기려 했던 실체는 무엇이고, 예술계에 만연한 위계폭력, 노동착취, 불합리한 처우에 대한 접점에 성폭력이 어떻게 닿아있는지를 고찰하고자 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여성예술인을 그토록 오랜 시간 고통 속에 살게 했던 원인의 실체가 보였다. 문제를 인식조차 할 수 없도록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철저히 숨겨두었던 진실. 관행처럼 뿌리 깊게 퍼져있던 문화. 그것은 성차별이었다.

미투를 고민할 때 가장 두려웠던 것은 앞으로 다시는 연극계에서 활동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3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전보다 훨씬 활발하게 연극을 하고 있고 지역을 넘어서 더 많은 여성예술인 동료를 만나 안전하게 작업하고 있다.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연극이지 어떤 세상에 속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렇게 나는 진짜 연극을 하기 시작했다. 두려움이 걷히니 나아갈 길이 보였다. 이제 내 자리는 내가 만든다. /송원 배우다컴퍼니 대표

저작권자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다른기사보기

개의 댓글

※ 아래 경우에는 고지 없이 삭제하겠습니다.

·음란 및 청소년 유해 정보 ·개인정보 ·명예훼손 소지가 있는 댓글 ·같은(또는 일부만 다르게 쓴) 글 2회 이상의 댓글 · 차별(비하)하는 단어를 사용하거나 내용의 댓글 ·기타 관련 법률 및 법령에 어긋나는 댓글

0 / 400
오피니언섹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