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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숙 선생을 그리워하며

전수미 숭실대 교수·변호사

전수미 숭실대 교수·변호사
전수미 숭실대 교수·변호사

아마도 세계 곳곳에서 인권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난민을 돕는다는 이유, 북향민을 돕는다는 이유, 특정 소수민족을 지원한다는 이유 등으로 반대 세력에게 수 많은 비난과 협박에 시달릴 것이다. 우리나라만 해도 ‘미투’ 운동이 이제야 시작되었지만 그 후 ‘역시 여자와 같이 일하면 불편해’라는 시선과 함께 여성배제 또한 시작되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였던 ‘허정숙 선생’에 대해서는 그 이름조차 들어본적 없는 이가 많다. 그녀는 일제강점기 여성운동을 펼치며 조선여성해방동맹 등 여성단체를 조직하고 활동한 인물이다. 광복 후 서울로 귀국하다가 남북협상에서 북측 여성계 대포로 참여 후 북한에 정착하여 북한 정권 수립에 참여 및 최고재판소 판사 등을 역임하기도 하였다.

그녀의 행적은 당시로서는 상당히 파격적이었는데, 예를 들어 여성에게도 성욕이 있으며, 여성에게만 정조를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 등이다. 성관계에 대해 보수적이었던 일제강점기나 해방 후 분위기를 생각하면 입에 올리기 힘든 말들이었고, 실제로 남자들은 그녀를 조롱하고 비아냥거렸다. 성해방과 반봉건운동을 위해 1920년 공개적으로 단발을 하자 성리학자들은 그녀를 패륜아라고 공격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허정숙 선생은 ‘여자도 한 사람의 인간이다’라고 주장하며 여성운동을 이끌었는데, 그녀의 다양한 활동들은 그녀를 “조선의 푸로레타리아 운동사상 잇쳐지지 아니하는 용감한 투사”라는 평을 듣게 하였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이자, 여성운동가, 그리고 사회주의 운동가로서 월북을 하여 북한정권에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최고헌법재판소장 등을 역임한 그녀. 하지만 남한의 군사정권은 그 특유의 여성의 성에 대한 보수적 태도를 바탕으로 그녀의 여성해방론, 성해방론을 비판하였다. 또한 그녀가 월북하여 북한정권의 각료에 역임되었다는 이유로 남한정부의 비판의 대상이자 거론하기도 어려운 금기의 대상이 되어버리기도 하였다.

현재까지 그녀는 약산 김원봉 선생과 마찬가지로 독립유공자 포상 심사기준 상 북한정권 수립에 기여한 자에 해당하여 서훈의 대상에서 제외되어 있다. 상훈법이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하고 형을 선고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경우 서훈 취소사유로 정하고 있어(상훈법 제8조 제1항 제2호), 이런 취지에서 허정숙 선생의 행적을 문제 삼을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포상 심사기준은 행정규칙 단계에서 국가가 추구하고 기념하여야 할 방향에 반공주의적 시각을 강하게 반영하는 것으로 합리적이라고 볼 수도 없고 대한민국에 대한 기여도를 무시하는 과락요소와 같은 절대적 기준이 될 우려가 있다. 이 점에서 허정숙 선생의 활동을 반공주의 시각을 전제로 공(功)과 과(過)로 구획하고 보훈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적절한 역사적 평가가 아니라 할 것이다.

미투하는 여성들을 내부고발자라는 불편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사회 곳곳에서 여성을 배제하는 2020년이다. 이러한 작금의 현실 속에서, 수많은 남성들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여성운동의 비전을 제시하고, 여성들도 인간으로서 개성과 감정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성해방과 자립을 외친 조선의 콜론타이, 허정숙 선생이 오늘따라 더욱 그리운 이유는 뭘까. /전수미 숭실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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