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원 전 TBN 전북교통방송 사장
“활주로에서 고추를 말릴지도 모른다” “고추 대신 멸치 말리는 공항이 될 수 있다”
부산 가덕도에 신공항을 추진하는데 대한 일부 야권 정치인들의 반응이다. 부산이 우리나라에서 서울에 이어 2번째로 큰 도시이고, 부산과 울산 경남지역에 800만 명의 인구가 몰려 산다는 점을 감안하면 발언 수위가 놀랍다. 무엇이 이러한 조롱을 가능케 했을까? 부산도 서울(수도권)에서 보면 한낱 시골동네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관념이 이들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실제로 ‘고추를 말릴지 모른다’고 처음 발언한 야당 국회의원은 우리나라 국책연구기관에서 오랫동안 근무했던 사람이다. 자신이 그동안 접했던 각종 통계나 자료에 비춰보면 지방은 수도권에 비해 볼품없고 가치 없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만큼 수도권의 위력은 거세고 무섭다. 주위의 모든 것을 집어 삼키면서 하루가 다르게 몸집을 키워나간다. 괴물스럽다.
이런 상황에서 지방이 갈 길은 하나뿐이다. 덩치를 키우는 것이다. 여러 곳에서 이런 시도들이 싹트고 있다. 대구와 경북은 2022년 7월을 시한으로 ‘대구?경북 특별자치도’를 설치하려고 하고, 광주와 전남은 연방제 수준의 지방분권을 목표로 ‘광주?전남 행정통합 논의를 위한 합의문’을 썼다. 800만 명의 인구를 가진 부산?울산?경남은 김경수 지사의 주도로 동남권 메가시티 건설을 추진하려고 한다. 충청권에서도 최근 충북?충남?대전?세종 등 4개 시?도지사가 한 자리에 모여 메가시티 추진에 대해 합의했다. 수도권에 대응하여 국제경쟁력을 갖추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적절히 대응하려면 함께 뭉쳐 덩치를 키우지 않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우리 전북은 사정이 딱하다. 다시 합칠 광역시도 없고, 인근 전남·광주나 충청권과의 연대도 쉽지 않다. 연대가 이뤄진다 해도 제 몫을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도내 자치단체 간의 관계도 매끄럽지는 않다. 종합경기장 개발방식을 둘러싼 전북도와 전주시의 오랜 갈등은 미봉합 상태이고, 전주시를 비롯한 14개 시·군들은 서로 연대 협력해서 힘을 키우기보다는 따로따로 제 갈 길만 가고 있다. 항공대대나 예비군훈련장 이전 등 사안이 생길 때마다 대화와 타협으로 풀지 못하고 갈등과 몸살을 겪는 하나의 이유이기도 하다.
특례시만 해도 그렇다. 도내에서 가장 큰 도시로서 전주시가 특례시 지정을 희망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특례시의 행·재정적 특혜가 중앙정부로부터 얻어지는 것보다 전북도로부터 분리 독립함으로써 발생하는 지분이 많다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전주를 제외한 다른 시군의 사정이 더욱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전주시가 특례시가 되어 전북도로부터 분리 독립한다면, 군산시나 익산시가 똑같은 길을 꿈꾸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어쨌든 국회 행안위의 결정으로 전주시는 일부 행정적인 특혜(특례)는 몰라도 공식적인 특례시 지정은 어렵게 됐다. 전주시로서는 안타깝겠지만, 이제는 잊어버리고 좀 더 넓고 멀리 봤으면 좋겠다.
아프리카 속담에 “빨리 가려면 혼자가고,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지금 아프리카 사하라사막보다도 훨씬 사납고 험한 수도권이라는 괴물을 견뎌내야 한다. ‘빨리’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지방소멸을 피해 살아남느냐가 과제다. 지금처럼 각 시군이 쪼개져서 마이웨이 한다면 전북은 앞으로 수도권은 물론 다른 지역에게도 크게 밀릴 것이다.
도내 14개 시군의 맏형으로서 이제는 전주시가 전북도와 시군의 중재 가교역할도 하고 전북도를 도와서 각 지역의 힘을 하나로 모으는 구심점 역할을 해줘야 한다. 전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함께 뭉치는 것 외에 다른 길이 없다. 지금은 절체절명의 시기이다. /이성원 전 TBN 전북교통방송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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