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소라 시인을 추모하며
김남곤 시인·전 전북일보 사장
한 잎 낙엽이 지듯
12월을 밀며 떠나가는
이 땅의 시인 소라여!
꽃도 보고 임도 보고 더 살다가 간다면
누가 뭐라 하십니까
그런데도 꼭 가야하는 그 길이
뭐하는 길이기에
도대체 다 뿌리치고 표표히 가시나이까
우리가 더 푸르게 살던 어느 날
당신은 <이 풍진 세상> 이라는 이>
시집 한 권을 짊어지고 나타나셨습니다
“지난 폭설에도, 산불에도
온전히 죽지 못하고 썩지 못한 것들
마침표 없이 출렁이는 저 파도 속에
떠밀려 가는데
비로소 그 큰 눈을 감는데
발을 구르는 자 하나 없더라
증언자는 더더욱 없더라“라는 구절을 서로서로
소주 찍어 읊으면서
우리는 바람에 날리는
티끌 같은 세상을 슬퍼했습니다
소라여!
당신은 이 시대의 굴곡진 아픔에 눈물짓는
참으로 순정한 시인이었습니다
겨울 한 밤중
설한풍에 등껍질 벗겨지는 통한도
눈물 한 방울로 웃으며 돌아서는
참으로 다수운 시인이었습니다
“우리가 굳이 떠밀리지 않아도
겨울이 떠나고
우리가 굳이 손짓하지 않아도
봄은 저렇게 절룩거리며 오는데
개나리 진달래 흐드러지게 피는데
그러나 그 어느 곳에도
팔짱 낀 구경꾼은 없더라“고
당신은 <이 풍진 세상> 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이>
또 그렇게 한숨지었습니다
대학 강단에서 이 나라 동량들을
무쇠처럼 키웠고
전북문인들 앞에 큰 깃발 들고
앞장서서 휘날렸고
석정문학관의 주춧돌을 다듬기까지
온갖 정성을 쏟았습니다
그 아름다운 영혼을
이 땅은 오래도록 기억할 것입니다
이제 그 먼 나라에 가시면
그렇게도 그립던 석정님도 뵈옵고
목마 타고 흐느끼는 어여쁜 밀어들도
더 고운 이야기로 꽃을 피우시겠지요
그리고 더 넓고 크신
당신의 믿음, 절대자의 품에 안겨
빛나는 큰 재목으로 영생을 누리시겠지요
남아 있는 우리들
머나먼 길 잘 가시라고
손을 흔듭니다
부디
소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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