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어느 회사원의 이야기다. 그가 서울에서 부촌으로 알려진 강남에 사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자신 명의로 된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불가사의다. 사방을 둘러보아도 온통 산뿐이던 장수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초등과 중등 시절을 보냈으니 언감생심 이러한 부촌을 꿈이라도 꿨겠는가? 그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같은 장수군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오고 대학 졸업 후 시골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그녀에게 애당초 서울은 마음에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둘이 만나 결혼해서 자식 낳고 지금 거기 살고 있으니 말이다. 부부 둘 다 산골출신이다 보니 대부분의 친인척들은 여전히 고향 마을이나 그 인근에 살고 있다. 자신과 가까운 지인이 강남에 산다는 사실만으로도 친인척들은 괜히 어깨가 으쓱해져서 이 부부를 만날 때마다 입에 침이 마른다. 그럴 때마다 ‘그냥 운이 좋았을 뿐이에요’라며 쑥스러이 얘기하지만, 이내 ‘실은 비밀지도가…’라고 실토하고 만다. 시샘도 비아냥도 아닌, 그저 좋아 신이 난 그분들의 진심에 화답하기라도 하듯이.
그런데, 막상 이 부부의 집에 다녀온 친인척들의 반응은 좀 시큰둥하다. 대치동 아파트 근처까지 갈 때만 해도 주변의 높은 빌딩과 강남이란 이름에 주눅 들어 있다가, 집안을 살펴보고는 이내 어깨를 쭉 펴는 것이다. 집도 너무 좁고 낡은 데다 아파트에 주차 공간도 없어서 살라고 해도 못 살겠다며 고개를 흔든다. 낡아빠진 아파트는 보물도 아닌 것 같고, 보물지도는 있어 보이지도 않는다. 도대체 보물지도가 있기는 한 건가? 그런데 뜻밖에도 안방 잘 보이는 곳에 놓여 있다. 화장실이 비좁아 헤어드라이기가 쫓겨온 곳이다. 접착력을 잃어버린 스카치테이프에 의지해, 경대 거울 오른쪽 반면을 차지하며 너덜너덜 붙어 있는 빛바랜 A4용지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 전역에 ‘보물지도 만들기 신드롬’을 일으켰던 모치즈키 도시타카가 소개한 그 지도 말이다. 얼핏 봐서는 무슨 말인지 알 수도 없는 여러 개의 말풍선과 그 안에 빼곡히 적혀 있는 글씨들. 자세히 보지 않으면 해독하기도 좀 난해하다. 다섯 개의 커다란 말풍선 속에는 ‘대표이사’, ‘베스트 셀러’, ‘E-MBA’ 등이 어지러이 적혀 있고, 이를 위성처럼 둘러싼 작은 말풍선에도 중간 목표들이 보이고 그 옆에는 날짜까지 표기된 달성 자축멘트들이 깨알 같다.
14년 전 어느 날, 자신의 소중한 꿈을 생각하며 그가 불쑥 종이 한 장에다가 10년 후의 희망사항을 단어로 적은 다음, 단어 주위에 말풍선을 그린 게 전부였다. 그리고는 잘 보이는 곳이 좋을 것 같아 출근 전 아내가 늘 이용하는 경대 거울에 떡하니 붙여 놓았다. 그때는 참 생뚱맞았다. 부장이던 시절에 임원도 아닌 ‘대표이사’를 쓰고, 책도 잘 안 읽던 때에 책을 내겠다고 하고, 업무로 눈코 뜰 새 없던 상황에서 석사를 꿈꾸었으니…. 강산이 변한 지금 그 보물지도는 보물을 찾게 해주었을까? 모두 다 찾아주지는 못했다. 그러나 대부분을 이미 찾았고, 나머지는 찾기 직전에 와 있다. 보물지도가 제대로 길을 안내한 덕분이다.
신년이 시작된 지 20여 일이 지났다. 혹 마음에만 담아 두고 아직 표현하지 못한 계획이 있다면 보물지도로 만들어 거울 앞에 붙여 놓는 것은 어떨까? 그나저나 보물지도의 주인이 누구인지 궁금하다. 이 사람이다. 오늘 당장 이를 실천에 옮기는 누군가가 바로 인생 보물지도의 주인이 아니겠는가. /이강만 한화에스테이트 대표
△이강만 대표는 한화그룹 경영기획실 지원팀장(전무), 한화 커뮤니케이션위원회 부사장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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