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차례 통합 무산 갈등·감정 깊게 쌓여
신뢰형성·상호존중·이해공유 선결 과제
지역 정치인들 논의 공간 마련이 더 시급
올해 전주시 행정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돼지카드’다. 코로나19 장기화로 어려움을 겪는 자영업자를 돕자는 취지로 지난해 11월 출시된 체크카드다. 출시 초기 큰 관심을 끌지 못했지만 새해들어 ‘착한 선결제’ 운동 덕분에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돼지카드로 결제하는 금액의 10%를 캐시백으로 돌려주는 기존 혜택에 더해 충전 인센티브 10%가 추가 지급되면서다. 두 달도 안돼 누적 가입자 13만 명, 판매 금액 1000억원을 돌파했다.
그러나 전북혁신도시내 일부 자영업자들은 돼지카드가 불만스럽다. 전주지역 자영업자를 돕기 위해 만들어진 돼지카드는 전주시 행정구역 안에서 사용되는 금액에 대해서만 캐시백 혜택이 부여된다. 혁신도시내 완주군 행정구역에 속한 업소에서 사용할 경우 혜택이 없어 사용자와 자영업자 모두에게서 볼멘소리가 나온다.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두고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이 나뉘어진게 원인이다.
폭설이 내렸던 지난 1월 전북혁신도시에서는 또다른 불만이 나왔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행정구역에 따라 제설작업에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전주시는 혁신도시내 전주시 관할 도로에서만 제설작업을 진행했고 완주군 관할 도로를 거쳐가는 차량들은 빙판길로 불편을 겪었다. 같은 혁신도시내 도로인데도 관할 행정기관이 다른 기형적인 행정구역 때문에 발생한 일이다.
같은 생활권에서 불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주-완주간 시내버스의 단일 요금 적용으로 두 지역 주민들은 경계를 오가면서도 추가 비용 부담없이 편하게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전주시와 완주군의 생활권 강화는 통근·통학인구 분석에서 잘 나타난다. 전북연구원의 조사 결과 전주-완주를 오가는 통근·통학 인구는 1995년 1만8069명에서 2015년 3만5676명으로 20년 새 두 배 넘게 증가했다. 전주와 완주의 경계에 위치한 전주 에코시티와 전북혁신도시 조성으로 두 지역을 오가는 사람들은 계속 증가세다. 생활권도 더욱 강화될 수밖에 없다.
전주-완주의 생활권이 강화되고 있는 가운데 그동안 세 번이나 무산됐던 전주-완주 통합 목소리가 다시 나오고 있다. 전주시의회 양영환 의원은 지난달 열린 임시회에서 전주-완주 통합을 위한 태스크포스팀(TF) 구성을 김승수 시장에게 촉구했다. 그러나 전주-완주 통합은 전주시가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정치권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전주시장과 완주군수는 물론 두 지역 지방의원들이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으면 더욱 빛이 났을 것이다.
전주-완주 통합은 완주군민들의 의사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며 통합 추진에 앞서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도 적지 않다. 과거 전주-완주 통합 과정에서는 협력의 경험보다 적대주의적 경험이 더 많이 쌓였다. 통합을 둘러싼 양 지역의 갈등과 감정의 앙금도 뿌리 깊게 남아 있다. 해법은 세 차례 무산된 과거의 경험에서 찾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통합 대상지역 간의 신뢰 형성, 상호 존중, 이해 공유 등을 중요한 과제로 꼽는다. 정치인들의 주도적 반대로 통합이 무산됐었다는 점에서 이런 과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는 지역 정치권력 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3전 4기 끝에 성공한 전남 여천군·여천시·여수시의 ‘3려(三麗)’ 통합은 정치적으로 중요한 이해관계자인 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의 주도로 이뤄졌다. 청주시·청원군의 통합 성공에도 반대에서 찬성으로 입장을 바꾼 지역 국회의원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전주에서 제기되는 전주-완주 통합 추진 움직임은 완주군민의 감정을 자극하는 도화선이 될 수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돼지카드를 함께 사용할 수 있고, 제설작업을 함께 돕는 것과 같은 이웃간의 신뢰와 이해를 쌓는 일이다. 과거 통합 과정에서 제기됐던 소위 ‘3대 폭탄(세금, 전주시 부채, 혐오시설)’과 ‘교육 및 농업예산 축소’ 같은 불신과 갈등이 가져온 감정의 앙금이 해소되지 않고서는 완주군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
네 번째 전주-완주 통합 논의의 문을 열 열쇠는 정치인들이 쥐고 있다. 여수시와 청주시의 통합 성공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양 지역 국회의원들을 중심으로 한 지역 정치인들의 논의 공간이 마련돼야 한다. 행정 전문가들은 지방행정체제 개편을 혁명보다도 어려운 개혁과제로 꼽는다. 결론은 나와있다. 지역이 달라지려면 정치인들이 달라져야 한다. /강인석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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