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지역 임진왜란사 정리의 필요성이 대두하고 있다.
임진왜란 시기, 전북지역 관군과 의병이 지역뿐만 아니라 경기도, 경상도 등 전국적으로도 파견돼서 국가를 지켜내는 데 큰 역할을 했지만, 연구 인력과 자료 부족으로 다른 지역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이다.
특히 전남에서는 최근 호남 의병을 기리기 위해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있다. 이에 전북에서도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연구·고증작업에 돌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전북 역사학계 등에 따르면, 1592년 있었던 웅치(진안과 전주사이에 있던 고개)전투와 이치(금산 서평)전투는 조선이 왜군을 방어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최대의 곡창지대로 후방 병참기지 역할을 해오던 전라도를 지켜냈기 때문이다.
충무공 이순신 장군이 이듬해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국가군량을 호남에 의지했으니, 만약 호남이 없으면 국가도 없다’(國家軍儲, 皆靠湖南, 若無湖南, 是無國家 국가군저, 개고호남, 약무호남, 시무국가)며 전쟁의 정황을 전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또 전북의 관군과 의병은 많은 지역에서 전투를 수행했다. 1593년 경기도 행주산성을 막아낸 행주대첩에서도 전북 관군이 활약했다. 전라도도절제사로 이치전투를 이끌었던 권율은 전쟁이 끝난 뒤, 군사를 이끌고 북상해 병력 1만여 명을 행주산성에 집결시켰다.
경상도 지역의 왜군을 막기 위해서도 파견됐다. 국방대학교 노영구 군사전략학과 교수는 “전라도를 방어하는 데 성공한 뒤, 경상도 지역에 증원되는 왜군을 감당해야만 했다”며 “전북은 향토방어라는 관점도 있지만 국가를 수호하는 군대의 역할을 많이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전북은 웅치, 이치 등 일부지역 전투를 제외하고 종합적인 연구와 자료 정리가 미비한 상황이다. 정유재란 시기 연구는 공백 상태이며, 일부 의병을 두고는 진위논란까지 빚어지는 상황이다.
반면 다른 지역에서는 1990년대부터 임진왜란사 자료 정리와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돼왔다. 경북에서는 <경북의병사> (1990년), <대구지역 임진란사> (2017), <경북지역 임진란사> (2018)가, 전남에서는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 (1990)이 발간됐다. 호남지방임진왜란사료집> 경북지역> 대구지역> 경북의병사>
전남도는 지난 9일 2024년까지 440억원을 들여 나주시 공산면 신곡리 일대 36만㎡에 건물 연면적 8300㎡규모로 남도 의병역사 박물관을 건립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이를 위해 도는 의병관련조사·연구, 전시·교육, 교류·선양 등 활동에 필요한 유물 수집에 나섰다.
이런 상황을 두고 전북대학교 한문종 사학과 교수는 “경상도나 전라남도 같은 경우 임진왜란 관련 자료 수집이 진행되고 있으며, 개별가문에서 문집들을 간행하기도 한다”며 “문집의 진위여부를 떠나 연구에 기여하는 부분이 있다”고 설명했다.
노영구 교수는 “연구인력이 경상도에 많은 영향도 있다”며 “이들 중심으로 임진왜란사 자료정리와 연구가 이뤄지다보니 전쟁 자체가 향토방어로 각인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전라도 군인이 경상도 지역에서 이동해서 싸운 전투를 두고 경상도 임진왜란사로 기록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북에서도 체계적인 임진왜란사 정리와 고증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관찬·사찬기록, 각 문중 소장 자료, 일본·중국의 고문서 등을 수집한 뒤, 연구를 거쳐 학술총서와 자료집을 발간해야 한다는 게 도내 역사학자들의 설명이다.
한문종 교수는 “황진, 채홍국, 김제민 등 전북 의병장 및 문무관, 최호, 송상현 등 타 지역 활동 인물, 권율, 이복남 등 다른 지역 출신이 전북에서 활동한 사례 등 정리해야 할 부분이 많다”며“임진왜란 당시 전북의 역할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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