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는 한국전쟁 직후 후발도 아닌 후후발 산업국가로서 비약적인 경제 성장을 이룩했다. 그리고 21세기 한국은 국제적 위상을 나타내는 각종 지표에서 기록을 갱신해가며 국제적 입지를 키워가고 있다. 지난해 1인당 GDP가 이탈리아를 넘어섰고, 세계에서 여덟 번째로 첨단 초음속 전투기를 개발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는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라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하지만 이러한 위대한 성취가 있기까지는 수많은 볼모가 필요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전통적인 도덕규범의 몰락이었다. 급속한 산업화와 경제성장에 매몰되어 끊임없이 경쟁만 외쳐왔던 탓에 전통적인 규범이 차지할 수 있는 자리는 줄어만 갔다.
전통적인 규범의 몰락은 그것을 낡아빠진 것으로 치부하는 세태에서 확인된다. 나고 들 때 어른에게 고하라는 출곡반면(出告反面)을 이야기하는 사람이 없고 가르치는 사람도 없다. 경로효친은 교과서에 박제되어 버린 채 생명력을 잃어버린 고물(古物)이 돼버리고 말았다.
전통적 규범이 식상하다 못해 낡고 헐어버린 누더기 취급을 받고 있는 결과는 여러 곳에서 참담하게 나타난다. 갈수록 고도화되는 도시범죄 양태, 끝없는 물욕추구와 약육강식을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세태, 여러 집단에서 다양한 형태로 번지는 각종 폭력적 행위 등,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들이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심각성을 더해가는 학교폭력 문제는 전통적 규범의 몰락이 불러온 암울한 단면이다. 교육부는 학교폭력 실태 전수조사를 추진하며 대책 마련에 고심하고 있지만 교육당국의 노력만으로 학교폭력 문제를 개선하기에는 역부족이다. 학교폭력에는 아이들이 노출되는 각종 환경과 인성의 결핍 등 우리 사회의 복합적인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학교폭력이 새로운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사회적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양상이 다양해지고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성 및 동성간 성폭력이나 상상할 수 없는 가학적인 괴롭힘은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생채기를 남기게 된다.
학교가 중재 기능을 상실한 것도 문제다. 과거와 달리 요즘은 교사에 대한 신뢰가 없다. 교사의 사회적 권위도 떨어졌다. 학교폭력 전담교사를 지정하려고 해도 기피하기 일쑤다. 중립적 입장에서 해결하려고 해도 가해자와 피해자 쌍방의 학부모가 각자의 주장만 펴면서 학교가 제시하는 솔루션을 거부하는 경향이 팽배하기 때문이다.
가정에서는 어떤가. 경제적으로는 윤택해졌지만 가족끼리 보내는 시간은 더 줄어들었다. 규범을 중시하는 엄격한 훈육보다는 아이를 과보호하는 경향도 짙어졌다. 심지어는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어른들의 세태가 아이들에게 그대로 이식되어져서, 있고 없고의 차이를 단순히 다름이 아닌 옳고 그름의 잣대로 보는 아이들까지 있다. 그리고 그 잣대로 없는 집 아이들을 얕보고 차별하기까지 한다.
오늘날 가정은 전통적 도덕규범의 발신지 역할을 잃었고 학교는 규범을 체득할 수 있도록 하는 진정한 교육의 장으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사회적으로도 전통 규범의 중요성보다는 개개인의 권리와 특성만 우선시하는 파편화된 경향이 커지고 있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이 몰(沒)규범의 폐해와 직간접적으로 닿아 있다.
전통적 도덕 규범은 한 사회가 오랜 세월을 거쳐 쌓아 올린 문화적 금자탑이며 집단지성의 산물이다.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퇴색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명징해지고 농익은 가치를 갖게 된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는 낡은 것으로 치부해온 전통적 도덕 규범으로 회귀하는 길을 모색해야 한다. 그것만이 화려한 경제적 성장과 함께 지속가능한 우리 사회의 문화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는 길이다. 가정의 달이 부모에게 용돈 드리고 아이들 선물 사주는 것으로 끝나서야 되겠는가. /최찬욱 전라북도의회 윤리특별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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